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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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순서: 현오>가람>건

 

 

 "6900원이요."

 

 

  삑. 여느 날과 같이 가람은 익숙한 솜씨로 한 사람이 잔뜩 들고온 물건을 손빠르게 계산하고는 지폐 몇장을 받아 거스름돈을 건네 주었다. 손님에게 대충 고개 인사를 하며 한손에 물건이 들은 봉지를 들고 나가는것까지 확인한 가람은 뻐근한 몸에 털썩, 카운터 의자에 걸터 앉았다. 오늘은 조용한게 아무탈없이 지나 가는 특별한 날인가 싶었다. 괜스레 즐거운 마음에 표정이 한껏 가벼워진 가람은, 옷 주머니에 꾸겨넣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시간이 지나가는줄도 모르고 한참이나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던 가람은, 누군가가 편의점에 들어왔는지도 눈치채지 못한채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입안에서 흥얼거리며 새로운 남자를 찾기위해 인터넷을 뒤적뒤적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알바가 농땡이 부려도 되는거예요?"

 

 

  삼각김밥 하나와 라면이 카운터에 쾅 내려앉고, 가람은 놀란 마음에 고개를 들어 얼빠진 얼굴을 한채 말을 건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뭐 새삼스럽다는듯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사람은 어이가 없다. 그래서 더욱 당황해서 촐랑거리며 가람을 재촉하기 시작한다.

 

 

  "아니, 난 손님도 아니예요? 계산 해달라고, 계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어 아직 꽤나 어려보이는 그 사람은 샛노란 눈동자를 휘날리며 핸드폰으로 시선이 떨어진 가람의 이마를 뚫어지게 노려본다. 하지만 가람은 아무말이 없다. 그저 기다랗고 마른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의 스크롤을 내리고만 있었다. 계속 말을 걸던 그 사람이 이제는 슬슬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건지 목소리 톤이 점점 높아져만 갔다. 마치 지금이라도 편의점을 폭발시켜버리겠다는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해서 상대하기 점점 귀찮아질것만 같아, 얼굴을 올려 그를 바라본 가람은 천천히 입을 연다.

 

 

  "백건, 꺼져."

 

 

  딱딱하게 말을 내뱉고, 거기다가 플러스로 애송이가. 라는 말을 상큼하게 붙여준 가람을 멍하니 바라보는 건이었다. 포인트를 잘못 잡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었다는 사실 만 듣고 충격에 휩싸인 것인지 어버버거리고 있는 건을 보며 혀를 쯧쯧찼다. 대꾸해주기도 귀찮아 한숨을 쉬며 편의점 창밖을 바라보는데, 가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음장마냥 굳었다. 오늘 무슨 날인걸까. 그리고 이어서 문이 열리며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정장을 빼입은 한 사람이 가람과 건이 있는 카운터로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다. 저 딸랑 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울러퍼져 두통을 가져왔다. 가람은 머리속이 털실이 엉킨것마냥 복잡해져서 그냥 이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오늘은 최악이야. 시발. 오늘은 최악이야. 연신 입안에서 맴도는 말들이 밖으로 튀어나올것만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니, 이 학생은 공부도 안하고 돌아다닌데?"

 

 

  딱봐도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성인남자로 보이는 그 사람은 교복을 입고 있는 건을 은근 비웃으며 학생이라는 단어에 강조하며 조롱했다. 아직 어린탓인가 멍청한건가, 그런 사소로운 시비 하나에 부들부들 떨며 금방이라도 얼굴로 주먹을 내리 꽃을것만 같은 건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비릿하게 웃은 그 사람은, 제 할일이 끝났다는듯 고개를 돌려 가람을 바라본다. 마치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달라는듯한 눈빛이였지만 가람은 벌레씹은 표정으로 스스럼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꾹 다물고 있던 입을 또다시 열었다.

 

 

  "아저씨도 꺼져요."

 

 

  존나 좆같네. 가람의 뒷말까지 꽤나 충격을 받았는지 성인 남자의 동공이 약간 커진듯 했다. 하지만 역시 제 기분을 숨길줄 아는 직장인은 직장인.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지만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고 누가 들어도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다시 말을 이어나가는 남자였다.

 

 

  "내가 호칭 바꿔서 현오형이라 하지않았나?"

  "지랄하네요, 아저씨."

 

 

  하도 많이 들은 말이라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현오 자신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가 팔에 힘줄이 솟은것이 적나라하게 들어났다. 표정이 점점 굳어가는 현오를 본 건은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르는것마냥 비웃기 바빴고, 가람은 그러던 말던 시큰둥하게 영업방해 하지말고 나가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떨궜다. 

 

 

  사람이란 참으로 알수없는 저돌적이고 맹목적이여서 알수 없는 동물이다. 자신이 관심을 전혀 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무안한 애정을 받을수도 있고, 그것에 조금이라도 반응을 하고 받아주는 척 연기를 해도 그 애정은 끊기지 않고 게속 이어진다. 간사한게 사람 마음인지라 사실 받아주지 않아도 강아지마냥 쫄래쫄래 따라오지만 말이다. 23살의 청가람에게도 이 사실은 적용되고 있었다. 나름 자부하면서 사는 평범하고 평범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애써 갈구하는 사람들은 꽤나 많았고, 아쉽게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일절 없는 가람은 하나같이 다 무시해주며 하루하루를 보내왔다. 하지만 애달프게도 이번만은 가람의 예측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 두명은 거쳐온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마치 자신이 가람의 소유주가 된듯이 이글거리는 눈을 하며 노려보는것은 일상이였고, 가람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면 뻔뻔스럽게도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의 이유에 대해 빠득빠득 우겨가며 한가지 두가지 따지고는 했다.

 

 

  '시발. 청가람. 너 어제 어디갔었어.'

 

 

  혹은,

 

 

  '아 시발. 내 멋대로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라한거 기억안나요?'

 

 

  이렇게 상스러운 욕부터 시작해서 가람을 너무나도 귀찮게 구속하는 두 동물들이 있었다. 가람의 기준으로 그 둘은 그저 머리는 고데기로 핀것마냥 이리저리 길게 늘어뜨려 풀고 다니는 한 발정난 수컷과, 잿빛을 띄는 머리를 한 왕자병 말기에 추가로 허세에 찌든것 같은 세상물정 모르는 발정난 애새끼 수컷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둘은 가람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고 구속하다시피 집착했다. 하지만 그 둘의 화를 더 긁는 청가람의 태도가 있었으니,

 

 

  '귀찮아.'

 

 

  라고 대답하며 무표정으로 그 동그란 두 눈을 뎅구르르 굴리며 듣는척 마는척 하는것이었다. 옆에서 자신을 방해하며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해데는 두 짐승들의 으르렁거림을 한귀로 들으며 딴귀로 흘린채 말이다. 청가람은 그저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싶었고, 적당히 알바를 하며 적당한 돈을 벌고, 마침 휴학한 김에 적당히 시간을 떼우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지만, 어째서 이런 시련이.

 

 

 "아..."

 

 

  가람은 앓는 소리를 입안에서 머금으며 팔을 쭉 뻗으며 카운터 위로 엎어졌다. 현오와 백건 그 둘의 목소리가 제 두 귀를 꾀꼬리마냥 쪼아데는것만 같았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으니 그 둘의 언성이 점점 높아져만 가서 눈까지 꾹 감았다. 만사가 귀찮아 죽을것 같았다. 그냥 이렇게 평생 엎어져있다가 사장한테 걸려 짤리는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할 정도로.

 

  꿀같이 달콤할것같았던 휴학생활을 하루하루 귀찮음으로 가득 채워 보내고 있는 23살 청가람의 또 다른 하루가, 다른 평범한 하루처럼 평온하게 지나가고 있는 어느 날이었다.

 

 

 

 

 

 Come to me

현오x가람x백건

 

 

 

 

 

  서론부터 현오와 건이 청가람이라는 한 남자에게 매달리게된 사건을 얘기하자면 아주 길다. 가람의 특출난 성적 취향부터 설명을 해야하니까 말이다.

 

 

  가람은 앞서서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조금 특별한,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은 꼭 한번씩은 거치게 된다는 음란물에 찌들어사는 사춘기도 금방 보냈고, 그렇게 그런것에 관심이 있는 어린 가람도 아니었다. 하지만 웃기게도 가람은 그 시기에 다른것에 눈이 돌아가 관심을 쌓기 시작한것이 문제였다. 주변 학창시절 반에 한두명 있는 친구들이 정말 이것만큼 최고인것은 없다며 이메일로 보내준 뻐꾸기.zip 폴더 따위를 뒤적거려도, 아무리 찾아보아도 재미난것이 없었다. 그래서 가람은 조급했다. 왜냐면 그 폴더안은 정말 최고급 양질의 음란물로만 가득 차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시선이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조금 다른사람들과 다른것 같았다. 정말로 의아했던 시기였다. 다른사람들은 환장하며 게임을 포기하면서 까지 봤을 그 것들이 재미가 없는 자신이 달갑지 않았다. 왜 재미가 없을까. 가람은 곰곰히 자기성찰 아닌 자기성찰을 하며 생각했다. 그 나이대 애들 중에서 제일 진지하게 고민했었다고 가람은 자부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민하던 가람의 인생에 한 획을 긋게 되는 중점은 바로 구글링의 신세계를 발견하게 된것이었다. 어쩌다가 접하게 된 새로운 음지에 빠져버린 가람은 황홀스러움에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말그대로 게로 시작해서 이로 끝나는, 평범한 남자라면 듣기만 해도 질색할 그 장르를, 가람은 그 처음 본 순간을 절대로 잊지못한다. 얼마나 짜릿한 경험이었는지. 기분이 붕붕 뜨는 느낌이, 하루라도 접하지 않으면 가슴이 꽉 막힌 기분까지 들 정도였다. 가람은 그 이후부터 온갓 사이트란 사이트는 다 섭렵하고 다닌 경험이 있다. 그러다가 영상에 나오는 흔히 말하는 여자 역활을 하는 남자처럼 호기심반 두려움반 자신의 몸에도 손을 건들여보기 시작하고, 한번도 겪어보지못한 쾌감에 정신이 팔려 이제는 엔조이 따위를 구하는 사이트에 가입을 하고, 첫 남자를 만나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적 취향을 눈치채고, 눈뜨게 되었다. 사실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의 첫남자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너무나도 많은 남자를 갈아치우고 한지라 가람은 머리를 꽁꽁 싸매고 조아리며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을 해봐도 나지 않는다는 간단한 결론을 내렸다. 그때의 기억이 나쁜 기억이 아니였음 된거지 그 기억의 주체가 기억속에 사라져도 상관없다는 가람의 단순한 주장이었다. 정말 참말로 냉철미가 철철 넘쳐흐르는 인간이었다.

 

 또한 가람은 예상외로 꽤나 많은 남자들이 선호하는 타입이였기도 하다. 여자처럼 선이 가늘고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때문인지 번화가에 위치되어있는 유명한 음지의 클럽이나 나이트에 가면 항상 반반한 남자들이 말안해도 들러붙기 일쑤였고, 가람은 여우같은 웃음을 슬슬 흘리며 그날 밤 자신을 위해 허리짓을 해줄 얼굴 괜찮고 몸 괜찮은 남자를 홀렸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자신을 붙잡고 번호를 알려달라는 남자들을 가차없이 뿌리치고 유유히 학교로 향했더랜다. 일단 출석체크라도 하고 집가서 자야지. 이게 말그대로 가람이 자신에게 정해놓은 법칙중 하나였다. 또한 만난 사람은 한두번은 몰라도 장기적으로 절대 만나지 않는것 역시 가람의 법칙이기도 했다. 그래서 요즘은 말그대로 서로 즐기다가 깔끔하게 헤어질수 있는 스트레잇을 선호했다. 조금이라도 양성냄새를 풍기면 아무리 얼굴이 마음에 들고 몸이 마음에 들어도 가차없이 아웃이였다. 분명 자신에게 징징거리며 들러붙을것이 눈에 훤하니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인지 남자들은 가람에게 더욱 들러붙고 집착하는듯도 보였다. 특히나 어디가면 꿇리지않는 재력있고 외모되는 반반한 남자들이 유독 더 심했다. 손을 뻗고 허우적거려도 결코 자신에게 반하지 않는 가람을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싶어했다. 남자는 무엇에 꽃히면 자신의 손바닥안에 넣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가람에 의해서 톡톡히 증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람은 그 사람들에게 아무 생각은 커녕 관심 조차 없었다. 누구에게 구속되는듯한 그런 족쇄같은 느낌이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었다. 가람에게는 남자들이란 자신의 꽉 막힌 가슴을 뻥 뚫어주는 관계에 필요한 셔틀로만 인식되었다. 그렇다고 여자를 자신의 성적대상으로 보는일도 전혀 없었다. 누굴 마음에 한구석에 담아 톡톡쏘는, 그런 짝사랑이라고 흔히들 일컷는 감정따위도 23년간 한번도 가져본적 없었고, 그건 가람이 예상하기로 앞으로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애처로운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오를 만난 그날을 얘기해보자면 가람이 더이상 술을 입에 갖다데면 자신의 손에 장을 지진다고 다짐한 날과도 같다. 가람은 그 기억을 떠오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자신에게 술을 마시게 한 인간을 잡아서 족쳐버리고 싶은 거지같이 더러운 기분이었다. 그날밤, 가람은 역시나 다른날과 같이 한 남자와 함께 클럽을 나와 근처 모텔로 향하는 길이었다. 클럽에서 그 거지같은 새끼가 자신에게 술을 어찌나 많이 먹였는지, 이미 정신은 반쯤 헤롱거려 기분이 몹시나 들뜬 상태였다. 가람은 그 남자의 허리를 붙잡고 거리의 아무에게나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가엾게도 가람의 술버릇이었다. 여우같이 초승달같은 눈웃음을 살살 치며 덤으로 헤헤거렸다. 그리고 그 거리에는 우연인지 아닌지 퇴근한 뒤 동기들과 함께 술 한잔을 하고 있던 현오가 주변 술집 밖에 앉아있었더랜다. 늦은 밤이여서 술에 취한 사람들은 주변에 널리고 널렸지만, 왠지 모르겠지만 가람이 현오의 두 눈에 들어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키작은 남자애가 생글거리며 웃어서 그런가, 자신도 모르게 처음보는 낯선 사람에게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 현오를 무슨일이냐며 회사 직원들이 툭툭 쳤다. 가람은 아무것도 모른채 여전히 술에 취해 방실거리며 남자와 모텔을 들어갔었다. 현오는 하얗고 앳되보이는 아직 새파랗게 어린 소년이 왜 한 남자와 함께 '그것'을 하기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모텔을 들어가는지 의아했다. 가람은 그때부터 귀찮은 존재가 자신에게 거머리마냥 들러붙을 사실도 전혀 모른채 말이다.

 

 

  어제부로 현오는 일이 손에 전혀 잡히지 않았다. 연신 머릿속에서 처음보는 그 소년의 순진해보이지만 뒤에서는 온갓 더러운짓을 다하고 다니는 자그마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거기다가 어디서 많이 본듯한 얼굴이여서 더 그랬는지, 괜히 신경이 쓰이는듯도 했다. 기지개를 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를 손에 쥐고 꾸벅꾸벅 조는 자신의 동기도 보였고, 머리를 긁적거리며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망할 상사도 시야에 들어왔다. 현오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책상에 널부러놓은 마감이 코앞인 여러 뭉텅이의 서류를 손에 쥐었다. 뇌가 베베 꼬여가는것만 같아 자리를 엎으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진정하며 담배나 하나 피고오자는 마음에 의자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갔다. 퇴근하고 싶다. 이 생각과 덤으로.

 

 

  마지막 담배는 내가 가져감- 따위의 회사 동료로부터 온 쪽지가 자신의 주머니 안에서 나오고, 현오는 부들거리며 회사 옆에 위치해있는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퉁명스럽게 옮겼다. 내가 이 회사 언젠간 그만둔다... 눈에 쌍심지를 켜며 편의점을 들어갔다. 딸랑, 종이 울리는 동시에 편의점 알바생이 어서오세요, 라며 형식적인 멘트를 날리는것을 대충 끄덕여주고 음료코너로 향했다. 맨날 잠깨려고 마신 에스프레소가 생각나 인상을 찌푸리며 오늘은 달콤한 걸 마시자며 딸기우유를 골랐다. 손에서 우유를 흔들거리며 카운터로 걸어가고, 의자에 앉아있던 알바생이 엉덩이를 손으로 털며 일어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담배 한값도 주세요."

  "어떤 종류로 드릴까요?"

 

 

 지갑에서 얼마없는 지폐를 몇장 꺼내며 말보루 레드요, 라고 대답을 한뒤 계산을 하려 고개를 드는 순간 현오는 무언가에 놀란듯 멈칫, 행동을 멈췄다.

 

 

  "아..."

 

 

  아무것도 눈치를 못챈 알바생은 현오의 손에 들린 돈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돈을 놓지않고 집요하게 잡으며 자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탐닥치 않은 현오의 이상한 행동에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 고개를 올려들었다.

 

 

  "돈 안주세요?"

 

 

  건방진 말투. 어제 봤던 그 소년과 정말 동일 인물이 맞을까. 현오는 한참이나 마음속으로 고민하다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채 알바생에게 말을 건냈다.

 

 

  "어제 밤에 어딨었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꽤나 당황한 알바생은 네?라고 재차 다시금 손님에게 정중하게 질문을 되물었다. 현오는 태연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딸기우유를 알바생의 손에 쥐어주었다. 얼떨결에 건내받은 우유를 또다시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 자그마한 입을 벌리며 대답을 한다.

 

 

  "이거 뭐예요?"

  "마시면서 얘기좀 해보라고요."

  "아. 집에 있었는데요."

  "거짓말."

 

 

  또 대답은 착한아이처럼 꼬박꼬박 해주면서, 슬슬 짜증난다는듯 기색을 들어내는 표정으로 바뀌는 알바생을 보고 현오는 자신이 너무 지나쳤나 잠시나마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의 호기심을 발동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능청스럽게 현오는 또 다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최신의 빛이 번쩍번쩍 나보이는 핸드폰이었다. 그리고는 알바생에게 사리살짝 웃으며 조심스레 건냈다. 알바생은 정말 이제는 뭐 씹은것마냥 한껏 표정을 종이접기처럼 구긴채 자신을 바라본다.

 

 

  "뭐 이걸로 어쩌라구요?"

  "번호 찍어달라고."

 

 

  허. 알바생은 기가찬듯 그제서야 진실된 표정을 나타낸다. 어쭈, 이젠 말까지 은근 놓아버리네? 싸가지가. 라고 말하는듯 싶었다. 두 붉은 눈동자를 뎅구르르 굴리며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하나, 라고 생각하는 표정이 얼굴에 하나같이 다 들어나 현오는 뭔가 모양새가 웃겨서 기어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름이 가람이구나. 청가람?"

  "아닌데요."

  "명찰에 다 써있는데, 뭐."

 

 

  현오는 가람의 왼쪽가슴 언저리에 위치하고있는 명찰을 턱짓을 하며 가르켰다. 어쩌라는듯한 표정을 지은 가람은, 이제는 아예 말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건지 손님에게 건내려고 한 말보루는 다시 제자리에 가지런히 넣어두고 의자를 끌어당겨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는 현오의 핸드폰을 카운터에 탁, 버리듯이 놓아버리고는 충전되어있는 제 핸드폰을 손으로 집어 철저하게 시선을 쳐 박았다. 웃기게도 현오는 그 모습마저 뭔가 귀여웠다. 이거 알고보니 완전 공주님아니야. 긴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내리며 한참이나 가람을 관찰하며 카운터 앞에 서있던 현오는, 또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남자랑 단둘이서 모텔 들어가는거 봤어. 너 맞지?"

  "......."

  "너 맞잖아. 술에 꼴아서는."

  "...그래서. 뭐 어쩌자는거예요 나랑?"

 

 

  이제서야 현오의 시선을 피하지않고 꽤나 열이 받았다는듯 따박따박 말을 쏘아데는 가람이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오가고, 현오는 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슬쩍 여유롭게 웃음을 흘리며 가람의 태도를 살폈다. 어쩐지 어제 많이본 익숙한 얼굴이었어. 그게 회사 옆 편의점의 알바생이었다니. 하루에 두번꼴로 편의점을 들락날락거리는 현오였는데, 어째서 이런 꼬리 아홉개 달린 여우같은년을 눈치를 못챈건지 정말로 의아했다.

 

 

  "나랑 잘래?"

 

 

  이건 엄연한 성희롱이었지만, 현오는 농담반 진담반을 섞어 툭 내뱉은 말이었다. 순수하지만 어딘가 고혹적인 얼굴을 지닌 소년이었다. 그런 애기같이 순전한 얼굴을 한채, 남자들과 마구자비로 몸을 섞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싶었다. 그래서 이런 성적인 질문에 가람의 반응이 궁금했었다. 화를 버럭내며 싫다고 소리를 지를지, 여전히 무표정으로 아무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할지, 혹은 좋다고 이따 보자며 눈웃음을 살살 쳐델지. 후자는 가능성이 제일 낮았지만. 현오는 가람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가람은 자신을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눈을 깜빡거리며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음으로 가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들은, 정말로 이 소년의 입에서 나온건지 의심될만큼 정말로 예상밖이여서 오히려 현오를 당황하게 만들어버렸다.

 

 

  "싫어요. 아저씨같은 사람들은 구질구질해서 나중가면 꼭 귀찮게 들러붙거든."

 

 

  첫째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생각보다 기분이 몹시나 좆같았고, 둘째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때문에 기가 찼고, 셋째 마지막으로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제 멋대로 단정짓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워 현오의 마음을 더욱더 불태우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 맞는말이여서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인지 더 짜증이 솟구치는듯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저씨같은 사람이랑 돈줘도 안자."

 

 

  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딸기우유를 세차게 현오의 가슴팍으로 들이밀었다. 무방비상태로 있던 현오는 억, 소리를 내며 등을 굽히며 웅크렸다. 그리고 축축하게 무언가가 젖어들어가는 촉감에 한번 천장을 보고, 다시 고개를 숙혀 자신의 옷 매무새를 확인했다. 짧은 시간 아무말 없는 현오가 고개를 다시 올리고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있는 가람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듯이 방긋 예쁘게 웃어준 가람은, 참으로 얄밉게도 카운터 옆에 놓여져있는 물티슈를 곱게 접어 현오에게로 건냈다. 하지만 현오는 아무 행동을 조치하지 않았다. 그저 가람의 붉은 눈동자 색빛마냥 물든 자신의 와이셔츠와 정장 마이를 빤히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화났어요?"

 

 

  가람은 걸터앉아 살짝 고개를 30도로 내린후 꽃받침을 한채 현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누가 들이대래. 귀찮게시리. 가람은 살짝 미소를 띈 얼굴로 무슨 꿍꿍이인건지 현오의 반응을 살피다가, 다시금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카운터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운동화가 바닥과 마찰하는 소리가 편의점 안에 울려퍼지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 표정을 띄고 있지 않은 현오를 향해 걸어갔다. 터벅터벅, 걸어가던 운동화는 현오 바로 옆에 걸음을 그제서야 멈췄다.

 

 

  "아저씨."

 

 

  가람은 한참이나 키가 큰 현오의 얼굴을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기다란 손가락 몇가닥을 뻗어 현오의 볼에 갖다데며 자신의 얼굴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만들었다. 현오는 자신의 볼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둘의 시선이 맞닥뜨렸고, 가람은 고민없이 얼굴을 들이밀어 현오의 건조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나지막이 포갰다. 얼마뒤 떨어진 가람은 자신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보는 현오의 이마를 톡톡 쳐보고, 또다시 히죽 웃어보였다.

 

 

  "됐죠?"

  "......"

  "이제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요. 나같은 애한테 환장하지말고."

 

 

  그제서야 현오는 무언가 웃기다는듯 피식 웃었다. 이거 생각외로 굉장한 놈을 만난것만 같았다. 방금 자신에게 닥쳤던 상황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 안을 휙 꿰뚫고 지나갔다. 현오는 한참이나 아래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가람의 오목조목한 앳된 얼굴을 훑어보다가, 몸을 움직여 젖은 정장 마이를 벗었다.

 

 

  "이거 세탁비 받아낼꺼니까 각오하고 있어라."

 

 

  그리고는 유유히 편의점 밖으로 몸을 돌려 나가는 현오였다. 딸랑, 더이상 듣기싫은 편의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한쪽 팔을 카운터에 짚으며 가람은 현오가 뒷모습을 보이고 나가버린 편의점 문을 바라보았다. 가람은 웃기다는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픽 웃었다.

 

 

  "누구한테 껄떡거려, 미친놈이."

 

 

  간만에 재밌는 상황이였다는듯 박수를 짝짝 한두번 친 가람이, 다시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의자를 끌어당기며 핸드폰으로 고개를 또다시 떨궜다. 마침 우연하게 편의점 사장에게 전화가 와서 인상을 잠시 찌푸리던 가람이 네, 하고 대답하며 전화를 받았다.

 

 

  "아 오후 알바생 뽑았다고요?"

 

 

  자신이 일하던 오후 시간대를 대체할 알바생을 뽑았단 말에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신이 난다. 매일같이 점심먹고 난 오후에 편의점에 들려서 담배를 사가는 그 별 꼴인 아저씨를 손도 데지않고 떨어트릴수 있다는 생각에, 일이 수월하게 풀리는것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가람은 손을 입가에 갖다 댄 채 하품을 하고, 이따 밤에 번화가에 나가볼 생각을 하며 물건 정리나 더 해보자고 기지개를 켰다.

 

 

 

 

 

2.

  자세하게 말해보자면, 가람에게 '섹스'란 그저 욕구풀기용이 아닌 가슴에 꽉 막힌 무언가를 빼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주기적으로 남자들과 침대에서 몸을 뒹굴고, 항상 남자들이 끊기지 않는 가람인지라 며칠동안이라도 몸을 섞지 않으면 숨을 못쉴것처럼 무언가 답답한게 억류해오는것같았다. 그럴때마다 가람은 담배를 하나씩 물곤 했다. 끊는 것이 힘든 게 담배라지만, 가람은 언제든지 끊으라면 끊을수 있는 것이 담배였다. 가람은 그저 담배를 섹스가 고픈맘을 잊기 위한 수단중 하나였다. 온종일 알바하랴, 관심도 없고 재미도 없는 대학 수업을 들으랴, 피곤에 쩔어 잠에 든 날의 다음날에도 몸을 섞지 못하면 가람은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런날에 주로 담배를 물었다.

 

  가람이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는 가람 자신도 이유를 잘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것은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남들 다 하는거고 나는 조금 많이 즐기는거지. 난 잘못된게 없어. 라고 주로 생각하는 가람이었다. 사실 언제 섹스에 맛들렸는지 가람은 아직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중학교 2학년때 처음 경험을 했었던것 같았고, 그 이후로 마치 중독이 된것마냥 인터넷에서 여러 연령층의 남자들을 만나 몸을 섞었다. 하지만 가람은 자신이 잘못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름 모를 남자가 자신에게 말한 말이 너무나도 기분이 나쁜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살다살다 너같이 닳은애는 처음본다.'

 

 

  무덤덤했지만 사실상 기분이 꽤나 나빴다. 그 남자 테크닉은 꽤 괜찮았던것같은데... 가람은 턱을 짚으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뭐 어찌됬든, 가람은 성인이 된 요즘에도 주기적으로 마음에 꽉 막힌 무언가를 없애기위해 섹스를 했다. 상대가 누구던 상관은 없었다. 그냥 뭐가 됐던, 자신을 휘어잡고 박아줄수있는 아무 사람이나 있으면 다였다.

 

 

  "뭐야. 고딩이잖아."

 

 

  요즘 편의점 알바로 고딩을 쓰나. 가람은 한쪽 턱을 괴고 앉아 이력서를 쭉 훑어보었다. 오늘 오후부터 일할 편의점 알바생의 이력서였다. 주변에 학교를 다니고, 방과후부터 알바를 하는듯 싶었다. 첫날이니 가람이 네가 잘좀 알려주라고 돼지같은 입술을 씰룩이며 놀러나간 사장얼굴을 생각하니 대낮부터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것같았다. 그래놓고서 시간수당은 더 안주겠지. 씨발 새끼가 진짜. 이력서를 구기듯이 손으로 꽉 쥐어잡은 가람은 고개를 좌우로 스트레칭을 했다. 언젠간 엿먹이고 간다, 돼지새끼야.

 

  곧 이어 가람의 귓가에 딸랑거리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어왔다. 이력서로 돌려있던 눈알을 위로 올렸다. 간단한 스트라이프 티셔츠 하나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애가 서있었다. 아무말없이 멍하니 바라보니, 똑같이 가람을 멍하니 바라보는 남자였다.

 

 

  "뭐야. 당신이 여기 왜있어요?"

 

 

  가람의 머리 위로 물음표의 형상이 그려지는듯 했다. 처음보는것같은데,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아는것이 있는듯 보였다. 어딜가서 딱봐도 어려보이는 이 애를 만난 기억이 없는데... 가람은 여전히 아무말없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니, 저번에-,"

  "뭐?"

  "기,억안나요? 진짜?"

 

 

  순간 머뭇거리며 자신에게 말을 토로하듯이 말하는 남자를 보니 짜증이 확 솟구쳤다. 안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왜 아는척이야. 새로운 알바생은 언제 오려나, 벽에 붙은 시계로 시선을 돌리며 가람은 머리를 긁적였다. 한참이나 말을 무시한채 문득 여전히 입구에서 서있는 남자가 거슬려서, 가람은 대꾸라도 해주자 싶어서 이름을 물어보았다.

 

 

  "백건이요."

  "백건?"

 

 

  처음 들어보는데. 너 다른 사람이랑 나랑 착각한거 아니야? 가람은 무심하게 툭 던졌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라 바라보는 건이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얼른 해결하고자 가람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너랑 뭘 했는데?"

 

 

  그 남자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가람은 이런 타입의 답답한 사람은 딱 질색이었다. 말을 하려면 말을 하고, 안하려면 얼른 꺼졌으면 싶었다. 어오, 어제는 그 변태 아저씨가 와서 껄떡데지를 않나, 오늘은 귀찮은 애송이 하나가 붙어서 자신의 기를 빨아가는듯한 기분이었다. 아. 누구든 붙잡고 질펀하게 한번 뒹굴고 싶어져서, 담배가 고파졌다. 한참이나 달싹달싹 하던 건은, 눈을 똑바로 뜨고 가람을 바라보았다.

 

 

  "몇달전에 당신이랑 잤는데요."
 

 

  너랑 잤다고? 가람이 건을 향해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 기억이 나지 않는듯 멍하니 있는 가람을 보고 건은 뒤통수를 얻어맞은것처럼 뒷목이 당겨왔지만, 기대도 바라지도 않았다는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뭐 이런 사람한테 뭘 바래. 하지만 건은 목소리를 이내 가다듬고 네, 라고 짧게 대답했다. 건은 몇달전의 지금까지도 생생한 그 하루를 머릿속에 떠올려보았다. 이 사람이 맞았다. 혼자 술집에 앉아 고고하게 바텐더랑 말 한마디 두마디를 주고받던 그 얼굴이. 키도 자신보다 한참 작고, 얼굴도 어려보여서 어찌보면 자신과 동갑처럼도 보였는데, 다른 면의 나른하고 세상에 쫓기듯 사는 그 분위기에 백건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잠시 뺏겼더랜다. 두 기다랗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야하게 보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처럼 보기만해도 상큼할것같은 모히또를 들고 마시는 모습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피식, 웃어보였다. 손가락으로 까딱거리며 자신에게 오라는 표현을 날리는 가람에게 건은 정신없이 홀려 그에게로 걸어갔다. 앉아있는 가람 앞으로 가 경직되어 서있으니, 그가 건의 목을 잡으며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허리를 굽혀 가람에게로 당겨진 건은 당황해 아무말도 못하는데, 순간 가람이 건의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나랑 여기 나가자.'

 

 

  뚝. 핀트가 끊긴 건은 가람의 손을 붙잡고 술집을 유유히 나갔더랜다. 자신을 찾고 있을 친구들을 뒷전에 두고, 일단은 이 알수없는 사람에게 집중하자며 주변의 숙박시설에 마구잡이로 쳐들어가듯이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자마자 윗옷을 벗으며 자신의 가슴에 기대어 지분거리기 시작한 가람에게 정신이 나갈것만 같았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야하지 않은 곳이 없어.

 

  그리고 이 사람은 아까전에도 느낀거지만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동그란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것을 능숙하게 핥아내리는 모습이 마치 그토록 기다렸다는듯 행동이 빨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건은 죽을것같았다. 몇 여자와 몸을 섞어보았고, 남자와는 처음 경험이

었지만 이렇게 여자와 달리 내숭없고 부끄러움없는 가람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꼴렸다. 그래서 가람의 뒤통수를 붙잡고 격하게 행동을 시행했던것같다. 나머지도 그렇고, 참으로 평범한 섹스는 아니었다는걸 건도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맛들리면 끝까지 그 취향을 안고 살아간다더니, 건은 관계가 끝나고 옷을 추스르고 있는 가람을 놓치면 더이상 이런 쾌감을 느낄수 없을것같아 급하게 붙잡았다. 할때 거칠게 해서 미안하다고 해야하나, 그쪽 같은 사람은 처음이라고 연락처좀 달라해야되나 무슨 말을 할지는 머릿속이 아직 정리는 하나도 되지 않았지만 무작정 붙잡았다. 하지만 가람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아까전 관계까지만 해도 달콤한 미소를 흘리고 자신을 홀렸던 얼굴은 온데간데 없고 싸늘하게 식은 얼굴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이지 가관이어서, 건은 아무 행동을 할수도 없었다.

 

 

  '왜이래?'

 

 

  정이 뚝뚝 떨어지는 싸늘한 목소리로 자신을 깎아 내리듯이 말하는 그 모습이 익숙하지 않았다. 건은 이렇게 옷을 추스르고 나가는 가람을 속절없이 그대로 보내버렸다. 정말 아까전에 나랑 뒹굴던 사람이 맞나, 건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이렇게 보낸 건은 가람을 한번이라도 더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가람과 만난 술집에 거의 출석체크를 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만날리 있나. 가람은 공부에 치이는 중간고사에 접어든 시기여서 술집을 갈 생각도, 심지어 남자와 몸을 섞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건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그저 지나가는 남자 중 한명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건은 정말 어이없었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이 사람을 길 한복판 편의점에서 만나다니. 이거 무슨 귀신이 곡할 노릇아닌가. 하지만 가람은 여전히 무표정으로 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듯 보였다.

 

 

  "내가 고딩이랑 잤다고?"

  "네?

 

 

  아. 건은 순간 당황해 손까지 저으며 아니라는 표현을 했다. 하지만 아니긴 뭐가 아니야. 가람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치로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는 가람이었다. 건은 순간 후회했다. 그냥 말하지 말걸. 시발, 욕이 튀어나오려는것을 꾸역꾸역 안으로 집어넣고 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나는 그쪽 기억해요."

  "난 기억 안나는데."

 

 

  가람은 바로 대답했다. 아직 민증에 잉크도 안 마른 것이 술집에 들어와서 나랑 잤단 말이지. 꽤나 짜증나는 일이었지만, 뭐 아무렴 어때. 물론 아직도 기억은 안나지만. 가람은 훌훌 털고 표정을 풀었다. 가람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문에 기대어 서있던 건이, 풀어진 가람의 표정을 보며 슬그머니 편의점 안쪽으로 들어왔다. 가람은 뭐하냐는듯 표정을 구기며 한참이나 키가 큰 건을 올려다 쏘아보았다.

 

 

  "알바하는 사람이 나예요."

  "......"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는 눈치도 없이 열락이 서려있는듯 웃어보이는 건이었다. 가람은 잠시 상황파악을 하지 못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가, 능청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건을 보고 이 알바를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사장의 전화번호로 바로 전화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 * *

 

 

 

 

 

  그 이후로 손가락으로 꼽을수 있는 며칠이 지났다. 거치적거리며 연신 자신에게 들러붙는 백건에게는 정말 말그대로 공과사를 구분하자며 딱 인수인계 할것만 알려준 가람이었다. 마치 자신이랑 한번 잤다고 뭐라도 되는것마냥 행동하는 꼴이 아주 살심을 끓게 만들었다. 번호를 알려달라는것을 무시하고 핸드폰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니, 그날 가람이 퇴근한 바로 다음 돼지같은 편의점 사장에게 연락해 자신의 번호를 기어이 알아낸 건이었다. 그리고는 카톡에 뜨는 리스트에 자신의 이름을 찾아 시답잖은 내용의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 애새끼에게 시간을 투자하는것이 너무나도 아깝고, 참으로 그악스러웠다. 난 너가 미미하게나마 기억이 난다고 몇번 못을 박았지만, 건은 아무렴 괜찮다는듯 자신에게 더욱더 들러붙었다.

 

  가람은 한숨을 쉬며 집을 나섰다. 자신에게 알바 끝날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한 백건을 씹고 퇴근한 가람은, 마침 주말이기도 하니 아무나 잡아서 떡이나 쳐야겠다며 번화가로 나서는 길이었다. 집에 가서 편하게 대충 옷을 갈아입고 어딜 갈지 고민하는 참이었다. 예전에 갔던 술집은 백건같은 애새끼들만 드글드글 모여있는것 같아 염두도 두지 않았다. 길을 따라 걷다가, 가람은 건만 없다면 어디든지 좋다고 생각했다. 밤이 다가와서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가람이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시발. 숨이 막히는 여름의 노을진 하늘이었다. 가람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옛날 기억이 떠올라 갈급해졌다. 정신없이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로 뛰었다. 왜 하필이면 지금 옛날 생각이 떠오르는건지. 식은땀이 등뼈를 따라 흘러내리는것이 느껴졌고, 현기증이 급격하게 밀려오는것 같았다. 정신을 놓고 아무나 붙잡으려 하던차, 드라마틱하게도 뒤에서 어디서 들어본것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다.

 

 

  "알바생?"

 

 

  가람은 얼음처럼 빠르게 굳었고,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걸음만 멈추었다. 일자로 내려뜨린 팔 밑으로는 꽉 말아쥔 주먹이 희미하게 떨리는것이 보였다. 역시나. 현오는 자신을 등지고 서있는 가람에게로 빠르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았다. 축축하게 땀에 젖어 있는 티셔츠였다. 몇일간 편의점에서 가람을 다시 만난후, 그다음날 부터 편의점에 출석도장을 찍었지만 가람이 아닌 어떤 덩치 큰 고등학생 한명이 매번 카운터를 지키고 있어 꽤나 아쉽던 참이었다. 그저 스쳐가는 인연인가 보다, 하고 신경을 끌려했지만 머리속에 연신 아른거리는 앳된 얼굴때문에 주말에 가람이 이 번화가를 자주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도 모르게 신발을 꿰어신고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만날수 있다니. 현오는 맥없이 웃어보였다. 시발. 이렇게 간단히 찾을수 있을줄이야.

 

  그런데 이상한건 가람의 상태가 꽤나 이상한것이었다. 숨도 가쁘고, 어깨를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누군지 확인조차 하지않으려했다. 그 이유로 가람은 한번도 하늘에서 시선을 떼지않고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현오는 뭔가 이상한것을 느꼈다. 가람의 격양되어있는 어깨를 손으로 꽉

쥐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 가람을 향해 괜찮아? 라고 한마디를 하려는 순간,

 

 

  "...시발, 괜찮냐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 지껄이기만 해봐."

 

 

  ,하고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채 분노에 점철된 목소리로 내뱉는 가람이었다. 불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람을 한참이나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현오의 눈 역시 사늘하게 식은것이 현저하게 드러났다. 분명 가람은 지금 자신이 아닌 무언가에 분노가 서려있는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자신을 피해 다니려고 편의점 알바 시간까지 바꾸고 자신을 손바닥에 갖고 노는듯한 지금까지 마음에 안들었던 가람의 모든 행동들이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심기를 꽤나 건들였던것이었다. 현오는 가람의 손목을 쥐어짜듯이 세게 잡고 질질 끌어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뒤에서 온갖 썅욕을 내뱉는 가람의 살의가 가득 담긴 악쓰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지금만큼은 현오도 자신의 지랄맞을 자존심이 찢어진 느낌이어서 자신의 행동을 멈출수가 없었다. 현오의 목울대가 미세하게 떨리고, 아무 모텔이나 끌고 들어온 가람을 침대로 내던졌다. 침대에 구겨지듯이 던져진 가람을 이글이글 끓는 눈으로 바라보고, 도망칠 방법은 이제 없다는듯 가람 역시 폭발할것같은 눈빛으로 현오를 노려보았다. 현오는 자신의 목을 조여오는듯한 넥타이를 아무렇게나 풀러 바닥에 내팽개치고, 와이셔츠 단추 하나씩 풀으며 가람에게로 한걸음씩 다가갔다. 한쪽팔로 지탱하고 고개를 들어 누워있던 가람의 위로 올라탄 현오는 맹수가 초식동물을 물어뜯듯이 목에 입을 맞췄다. 가람은 아무 저항없이 가만히 누워있을뿐이었다. 알아서 하라는듯이, 무심한 태도로.

 

 

  "어짜피 남자하나 잡아서 떡칠려고 나온거 아니야."

  "......"

  "하나 낚으려는데 시간 소비하지말고 나한테나 조용히 박혀."

 

 

 현오는 가람의 연한 살냄새를 맡으며 옷가지를 하나씩 벗겨나갔다. 매번 남자와 그렇게 몸을 섞는것을 알고나니, 가람의 몸에 코를 쳐박으면 신내나는 정액냄새가 흩어질것만 같았다. 밤이되면 아무 남자나 붙잡으며 들어오라 손짓하는 추악한 창녀들처럼. 돈만 안받는다 뿐이지 가람은 그런 사람들과 신세가 똑같을 뿐이었다. 하지만 왜일까. 속을 확 뒤집어 놓을것처럼 묘한 그 눈빛과, 앳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남자의 자존심을 살살 긁어놓는 음습한 시선은. 이 애는 그저 기갈 들린것이 타고 난것같았다. 현오는 정신없이 가람의 몸을 더듬었다. 미친것같았다. 거치적거리는 바지를 마저 벗겨 침대 밑으로 훌렁 던져버리고, 모텔 안에 비치되어있는 젤을 꺼내 덕지덕지 아무렇게나 발랐다. 가람의 다리를 벌리고 자세를 잡는 순간, 텅 빈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가람에 의해 현오는 행동을 문득 멈추었다.

 

 

  "...남자는 다 똑같아."

 

 

 현오는 선연한 가람의 말 한마디에 그저 가만히 아무말없이 내려다 볼뿐이었다. 그렇게 가만히, 몇분동안 가람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가, 애써 못들은척 자신의 것을 들이밀었다. 그래, 가람에게 무슨 과거가 있던 무슨 시련이 있던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읏, 가람의 앓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고, 현오는 자존심의 회복과 달성감, 성취감에 넋을 놓고 행위에 집중했다.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고, 정신이 나간것같기도 하고. 자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이 행위으로 인해 자신의 철옹성같은 자존심을 다시 이어 붙혔다는것에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몇번이나 정사가 이어졌는지 모를만큼 정신없는 행위가 마무리를 짓고, 현오는 실털처럼 꼬인 마음에 옆에 누워 잠에 취한 가람을 등지고 누워있었다. 가람의 온몸에는 현오가 너무 세게 쥐어잡아 생긴 울혈자국들이 얼룩덜룩 남겨져 있었다. 얼마나 오래간만에 느껴본 쾌감이건지, 현오는 정신을 잃고 이제 그만좀 하라는 가람의 진심어린 비명소리를 못 들은것처럼 허리를 부여잡고 이어나갔었다. 현오는 28년간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성적 취향에 금이 가기 시작한것을 느꼈다. 며칠 봤다고 벌써 이렇게나 돼버린 것인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현오는 물이나 마실까, 생각하고 발을 딛고 일어나려는데, 순간 침대 밑에 아무렇게나 벗겨놓은 가람의 옷가지 안쪽에서 번쩍거리며 불을 비추는 가람의 핸드폰이 보였다. 진동도 울리지 않고, 벨도 울리지 않고 무음의 가람의 핸드폰을 등을 굽혀 주워 들었다.

 

 

  "...편의점 알바생?"

 

 

 그저 이름도 없이 떡 하니 편의점 알바생이라고 저장되어있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울리는것이었다. 편의점 알바생이라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딱 한명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잿빛의 건방지게 생긴 고등학생. 매번 오후에 편의점을 들어와서 카운터에 있는 사람만 확인하고 아무것도 사지않은채 띡 나가버리면 뒤에서 광기가 서린 눈빛으로 시선을 날리던 그 학생. 현오는 한참이나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다가, 기어이 전화가 끊겨지고 다시 검은색 화면으로 되돌아가는것을 보고는 헛웃음을 날렸다. 이거 나이대로 상관없이 좆달린 남자라면 다 후리고 다니는거구만. 갑자기 그것도 청가람의 깜냥이겄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자신이 띠동갑도 더 차이나는 애새끼에게 묘한 수컷의 냄새의 반격심을 느끼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현오는 핸드폰을 서랍에 얹어놓고 붉은 눈을 감고 있는 가람을 팔짱을 끼고 내려다 보았다.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듯 마음놓고 죽은듯이 자고있는 가람의 여유만만한 태도가 갑자기 몹시나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시발. 현오는 낮게 욕을 지껄이며 이채가 도는 눈으로 히죽거렸다.

 

 

  "이거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선선한 여름밤의 바람에 투명의 커튼이 방 안쪽으로 휘날림과 동시에, 현오의 웃음소리가 작게 울러 퍼졌다.

 

 

 

 

 

3.

  그날부로 가람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루종일 골골거리며 침대에 앓아누웠다. 현오와 억지로 몸을 섞은 다음날부터 말이다. 나쁜말로 하면 따먹혔다는 발언이 머릿속에서 쉼없이 맴돌아, 열이 잔뜩 오른 가람은 물수건을 이마에 얹은채 이불을 덮고 끙끙거리며 누워있었다. 뒤늦게 찾아온 감기인걸까. 어제 자신을 두고 창문은 활짝 열어둔채 모텔을 나가버린 현오탓인걸까. 정신없는 섹스를 하고 아침에 추운 바람 기운때문에 억지로 두 눈을 뜨니 창문을 활짝 열려있고 아무도 없이 조용한 방 안이었다. 가람은 대충 옷을 챙겨 입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까지 택시를 타고 도착한 것이었다. 아, 택시비만 엄청 나왔어. 가람은 표정을 잔뜩 찌푸리고 창문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나뭇잎을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고는 다시금 고개를 반대편으로 획 돌려버렸다. 좆같은 새끼. 시발새끼. 누구탓이던 상관없어. 코를 훌쩍거리며 눈을 두세번 깜빡인 가람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버렸다.

 

  아까전부터 무음으로 해놓아 화면만 환하게 빛나던 핸드폰이 이제서야 잠잠해진듯 했다. 침대 옆 테이블에 얹어두었던 핸드폰을 손을 뻗어 더듬었다. 손에 집히는 것을 잡아 끌어당겨 잠금화면을 푸니, 몇개의 부재중 통화와 카톡이 잔뜩 와있는 상태를 보고 가람은 얼굴을 찡그렸다. 거의다 편의점 알바생, 이라고 저장해놓은 백건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처음에 인사할때부터 얼굴이 고집불통에 지 멋대로 일것 같더니. 역시 얼굴만 반반해서는 소용없어...라며 혼자 중얼거리는 가람이었다. 이참에 핸드폰 정리좀 하자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리면서 전화번호부를 확인하니 난생 처음 보는 연락처가 눈에 띄었다. 현오? 입밖으로 발음해보며 가람은 누군가 하고 잠시 고민했지만, 곧 이내 자신과 몸을 섞은 그 남자라는것을 깨달았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겨서는 섹스 취향이 고약하게 더러운 아저씨. 자신의 두 손목과 목 얹어리 주변에 울긋불긋 남은 자국들이 그것을 명백하게 증명해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구질구질할거라는 자신의 예상은 역시나 빗나가지 않았다. 자신의 핸드폰을 만져 연락처를 굳이 친절하게 저장까지 해주신것을 보면, 분명 자신의 번호도 저장해갔을터. 가람은 역시나 이럴줄 알았다면서, 이제는 핸드폰에 비밀번호를 설정해놓아야겠다며 다짐아닌 다짐을 할때였다.

 

  순간, 건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가람이 비밀번호의 설정을 하려 움직이던 행동과 맞부딪혀 자신도 모르게 건의 전화를 수락해버린 가람이었다. 썅.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낮은 욕설이 튀어나왔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무 죄없는 핸드폰을 고물상에게 팔아버리겠다며 열불을 내던 참이었다. 귀찮은 티를 다 내면서 전화 너머로 가람씨?! 라고 소리치는 목소리에 가람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답지않게 호들갑을 떨며 많이 아파요? 전화는 왜 안받는데요? 라며 가람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없던 두통마저 생기는 기분이었다.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는 건을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다시금 가람씨, 다 듣고 잇는거 아니까 빨리 대답해요, 라는 건의 낮은 목소리에 그제서야 입을 여는 가람이었다.

 

 

  "...왜."

  "많이 아파요? 내가 가람씨 대타로 알바 나와있어요."

  "안아파."

  "또 혼자 살아서 아무것도 안먹었죠? 이따가 죽 사들고 갈께요, 기다려."

 

 

  허. 자신의 말을 우걱우걱 씹어드시고 지 할말만 무대포로 쏴버리는 건이 정말로 답답함의 절정이어서 헛웃음을 쳤다. 여기고 저기고 왜 다들 나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인건지. 이새끼도 알고보면 지 멋대로야. 어쩌면 곰의 탈을 쓴 호랑이 새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온몸에 소름이 돋는듯 했다. 아, 정말 잘못 걸렸다. 잘못 걸렸어.

 

 

  "집주소 안알려줄껀데."

  "이미 사장님한테 사전조사 다 해놨으니까 걱정하지마요."

 

 

  싱글벙글. 이제는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가람의 무심한 태도가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치는 건이었다. 이런 태도가 가람은 건이 금방 떨어져 나갈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중의 오산이었다. 건은 오히려 진드기 마냥 더욱더 가람에게 집착했다. 시발, 끊어!!! 핸드폰을 벽으로 던져버린 가람은 몸을 이리저리 뒹굴며 소리를 질렀다. 이번년도는 무슨 마가 꼈나, 정말 지겹도록 자신에게 붙어오는 거머리들이 왜 이렇게 많은건지. 가람은 벌떡 일어나 자취방의 문에 걸려있는 문고리를 걸어놓고 다시 침대로 몸을 던져버렸다. 이불에 파묻힌 가람은 앓는 소리를 내며 베개를 끌어당겨 안았다.

 

 

  "씨이발...다 꺼져줬음 좋겠다..."

 

 

  묘하게 분노가 가득담긴 가람의 한마디었다.

 

 

 

* * *

 

  

  다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 조용한 점심시간의 사무실에서, 온갖 시선은 노트북에게로 쏠려 무언가 열심히 타자를 치고있는 현오의 테이블 위로 커피 한잔이 툭, 내려왔다. 살짝 흔들린탓에 책상에 흐른 커피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린 현오는, 고개를 들어 커피를 내려놓은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타부서에서 자신에게 자주 연락을 해오던 여직원이었다. 검은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오늘도 직장인 메이크업을 갖춘 그녀가, 꽤나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오씨, 나랑 얘기좀해."

 

 

  현오는 물끄러미 여직원을 바라만 보다가, 일이 바쁘다고 가보라는 말을 내뱉고는 다시 화면으로 집중했다. 여직원의 표정은 알게모르게 살짝 일그러졌고, 뭐가 그렇게 바빠? 라고 신경질적인 말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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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치 가람이 주의

*15금 단어 주의

 

 

 

 어둠이 새벽과 함께 폭풍처럼 다가오고 하루가 끝나는 것을 무섭게도 빨리 알려주는 어느 날 밤, 백건은 살기 품은 눈을 한채 어디론가로 빠르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팔할것같은 표정을 짓고 그 어느때보다 흥분을 해서, 그 누구도 건드릴수 없을만큼 백건은 무언가에 한이 맺힌듯 보였다. 번화가에 위치한 건물들의 싸구려 불빛들이 화려하게 여기저기 비쳐오고, 거리에는 술에 취해 남자여자 가릴것없이 서로 엉켜붙어있는 야시스러운 장면들이 자주 보였다. 거리를 지나가는 자신의 팔을 잡아오며 들어오라고 들러붙는 더럽고 추악한 창녀들도 간혹 있었으며, 그럴수록 백건은 화를 주체할 수 없어 연신 입 밖으로 거친욕을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젠 정말 참을수 없을만큼 화가 솟구쳐 올랐다. 백건은 고개를 들고 거리 속 모퉁이의 깊숙이 위치한 한 문을 바라보고는, 너무나도 익숙한 태도로 세차게 밀고 들어갔다.

 

 어둡고 비좁은 복도는 벌써부터 쾌쾌한 냄새를 풍겨왔고, 여기저기서 결코 듣고 싶지 않은 음탕한 신음소리들이 들려왔다. 복도를 따라 걸으며 나열되어 있는 방의 유리창을 통해 하나하나 안을 확인하던 백건이, 갑자기 한 방의 문 앞에 우뚝 멈췄다. 백건의 노란 눈동자가 말없이 유리를 통해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몇초간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이나 무언가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의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힘을 주며 돌렸다. 끼익, 문이 녹슬어 만들어 내는 기분 나쁜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지만, 백건은 눈앞에 보이는 그 한사람에게 정신이 집중되어 그런 소리는 신경쓸 틈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두운 조명 때문에 알아보지 못할법도 하였지만, 백건은 확신이 찬 눈빛으로 소파에 나체로 엉켜 누워있는 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힘줄이 솟아 혈관이 다 보일정도로 주먹을 꽉 쥔 그가, 입을 천천히 열었다.

 

 "이 씨발년이..."

 

 방안은 쾌쾌한 향 냄새로 가득차 두통을 폭풍처럼 몰려오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쓸 틈이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는 자신과의 약속을 또 다시 어겨버린 한 썅년이 다른사람과의 정사를 자랑하는것 마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듯 널부러져 있었다.

 

 "청가람, 어째 요즘들어 얌전하다 했지."

 "......"

 "...이쁘다 이쁘다 해줬더니 또 뒷통수를 쳐?"

 

 낮은 목소리로 윽박지르던 백건이 옆에 놓여져있던 테이블을 발로 힘차게 밀어버렸다. 아수라장이 되도 상관없다는듯,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은 수평으로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는 가람 때문인지, 백건은 열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걸 차마 참을 수 없다는듯 바닥에 떨어져 물이 흐르는 가짜 장미꽃이 담긴 유리병을 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져 버렸다. 와장창, 유리가 깨져 벽을 타고 유리조각이 흩어져 내렸다. 벽에는 물이 줄줄 흐르고 장미의 흩어진 잎사귀들은 바람에 날려 하늘하늘거리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제서야 짙은 쌍커풀이 올라가며 동그란 두 눈을 뜨는 가람이었다. 한참이나 긴 속눈썹을 흩날리며 깜빡였다. 바닥에 정신없이 흩어진 유리조각들을 보고는, 이게 무슨 지랄이냐는 새침떼기같은 표정으로 백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어깨 선으로 흘러내린 옷가지를 추스려 입었다. 행동이 느렸다. 마치 너가 기다리라는 뜻이 담긴 표정으로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듯도 했다. 그래서 백건은 더욱 더 화가 솟구쳤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던 자신의 마음을 쥐어잡고 손바닥안에서 너무나도 잘 가지고 노는것만 같아서. 자신이 마치 장난감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뭐야, 너였구나?"

 

 그냥 내뱉은 한마디였다. 툭. 당혹스럽게도 가람의 한마디는 몹시나 무덤덤하고 무미건조해 백건을 꽤나 당황하게 만들었다. 백건은 소리없이 가람을 쳐다보았다. 마치 여기에 왜 너 따위가 왔냐는 식의 말투로 들렸다. 고양이마냥 갸르릉 거리던 그는 몸을 일으켜 세워 소파에 등을 기댄 후, 백건을 바라보며 다리를 야하게 꼬았다. 여자가 입을 법한 실크 제질의 란제리따위를 입고 있던지라 가람의 바디 라인은 현저히 들어났으며, 거기다가 장미처럼 붉은 빨간색 립스틱으로 입술을 칠한 천박한 꼴을 보니 머리가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화가 가라앉지 않아 주먹쥔 손을 부들거리며 떨던 백건은, 가까스레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천천히 열고, 단어가 마디마디 끊어지듯 말을 천천히 이어나갔다.

 

 "적어도 사람이 말을 했으면 지키는 시늉이라도 해야되지않겠냐."

 "자기야, 그게 무슨말이야."

 "...이 씨발년이 진짜..."

 

 온몸에 열이 눈으로 몰리는 듯 눈가가 시뻘게진 백건이, 흥미없어보이는 가람의 아니꼬운 태도에 더욱더 열이 받는듯 보였다. 사실 무엇보다 열이 오르는건 가람의 태도는 둘째치고 상태였다. 여러사람과의 정사를 증명해주는듯 그의 허연 허벅지 사이에는 정액이 늘러붙어 덕지덕지 얼룩져 있었고, 온몸에는 타인이 만든 짐승들의 자국들이 붉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었던 향에 제일 마음에 걸렸다. 적어도 예전에는 약에는 일절 손데지 않던 가람이 최근들어서 그렇게 약에 손을 뻗어 집착하기 시작했다. 약에 정신이 팔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몸을 섞는건 다반사고, 즐길건 다 즐긴후 자신을 챙길 백건에게 연락을 하는건 가람의 너무나도 당연한 습관이 되버렸다. 약에 취해 자신을 부르는 가람을 죽이고 싶을정도로 증오하고 미워했지만, 반면 너무나도 가엽고 안쓰러운 무지한 마음에 결코 넓지않은 마음으로 그를 애써 포용했다. 이렇게 무한 반복이었다. 점점 약의 노예가 되어가 매일밤 약을 찾으러 시내를 나가고, 돈을 지불하지 않는 대신 남자들과 천박하게 몸을 섞는 것이었다. 그게 아빠뻘이던, 동갑이던,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남자건 여자건. 청가람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몸의 욕구를 채우고, 오직 머릿속의 안정감을 위해 약을 했었다.

 

 가람이 약의 기운이 빠지고 제정신으로 돌아왔을때는 애석하게도 미안하다며 울고불고 온갓 난리부르스를 다 치며 백건에게 매달려 사죄했다. 말다툼을 하다 정말 어쩌면 손찌검이라도 할 가능성이 있을것같은 생각에 백건이 말을 끊고 나가려하면 미친듯이 달려들어 미안하다 빌었다. 마치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같은 모습에 백건은 항상 약한 마음을 넘어설수가 없었다. 이길수가 없었다. 가녀린 이 아이를, 못본척 내버려둘수가 없었다. 자신이 없으면 영원히 이 폭풍우에서 절대로 혼자 헤어나오지 못할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백건은, 청가람을 좋아했다. 비참한 현실이었다. 사람의 마음은 정말로 말도 되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자신이 원하는 현실이 점점 멀어져만 갈수록, 사람은 그것을 갈구하고 허우적거리며 손에 쥐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건 사람인 백건에게도 마찬가지인 난제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걸까, 아니면 또 다른 행복을 위해 가람 옆에 남아있어야 하는걸까.

 

 "오늘은 안했어. 아무일 없었다구,"

 "뭐?"

 "약만 했어. 약속 지킨거 맞잖아."

 

 시큰둥하게 말하는 가람을 보면서 예전의 주고받던 말이 머릿속에 점점 맴돈다. 더이상 아무나 몸을 섞지 않겠다는 약속이.

 

 "...씨발년, 넌 내가 박아보면 다 알고, 니 허벅지에 덕지덕지 붙은거 보면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닥쳐."

 "아니, 이거는 그냥 패팅만 한거야,"

 "....허, 이게 진짜 돌았구나."

 

 이제는 너무나도 당당하게 대답하는 가람의 태도가 정말이지 꼭지가 돌아버릴것만 같았다. 백건은 이글거리는 눈을 한채 가람을 향해 성큼 걸었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꼬고 있던 다리의 발목을 휘어잡아 양옆으로 벌렸다. 소파의 안쪽으로 가람의 작은 몸을 우겨넣고 어느샌가 지딴에 수치스러움을 느낀건지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움츠린 가람을 입을 다물고 바라본다.

 

 "이제서야 겁이 들어? 이제서야 드냐고."

 "...하지마."

 "넌 되고 난 안된다는 논리따위는 꺼져."

 

 어쩌면 가람은 그저 관심을 원한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생각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한명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웃기게도 작은 소망이랄까. 아까전에는 고양이같은 새침한 눈을 부라리며 잘만 말하던 모습이었는데, 막상 자신이 원하는 전개로 나가지 않으니 겁을 먹고 은근슬쩍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참으로 모순이었고, 너무나도 비웃고 싶은 모습이었다. 백건은 슬쩍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였다. 천박해보이는 란제리를 가슴위까지 훅 올려버리니 가람은 잠시 머뭇거리며 하지말라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어쩔수없다. 이미 핀트가 끊겼는걸. 그러니까 애초에 잘하던가. 백건은 방안에 피워놨던 약때문에 언젠가 자신까지 정신이 나가버릴것같은 안좋은 예감이 들었다.

 

 "진짜 찢어죽여버리고 싶은걸 참고 있는거니까 입 닥치고 있어,"

 "...하지마...하지말라 했어..."

 

 약자는 맹수앞에서 한없이 더욱더 약해진다. 그건 언제든지 사람에게도 적용이 되곤한다. 백건은 가람의 다리를 더욱더 수치스러울정도로 벌리고 자신의 하의 지퍼를 고민없이 내렸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이밀어 거칠게 가람의 입을 물어뜯듯이 맞췄다. 붉은 입술을 핥아보기도 하고, 한쪽볼을 너무나도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기도 하였다. 그 때문인지 가람의 입술 주변에는 빨갛게 칠한 립스틱이 이미 짙게 번져 물들어져만 가고 있었다.

 

 "흐으...아,"

 "그렇게 원하는 거, 박아줄께. 다리벌려 썅년아."

 

 어쩌면 씁쓰름한 싸구려 립스틱의 맛이 혀끝에 강렬하게 남아있는건, 마음 한구석 상처받은 어린 동백꽃의 한 때문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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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아!"

 

 마지막 탄성을 내뱉은 가람 위로 백건이 정신을 놓고 풀썩 쓰러졌다. 이 둘의 정사를 증명하는듯 가지런히 덮고 있었던 이불은 엉망진창이 되어 보기좋게 구겨져 있었고, 가람의 배에 묻은 끈적한 액체가 무너진 백건의 배에 옮겨져 찌꺽거리는 노골적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참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을 고르던 둘의 침묵을 깬건 가람의 가차없는 신경질적인 한마디였다.

 

 "야 비켜. 무거워."

 

 몇번을 한건지 모를만큼 몸에서 힘이 쭉 빠진 가람의 매마른 가슴팍 위를 그 무거운 무게로 백건이 뭉게고 있으니 돌덩이 하나가 자신을 누르는 기분이었다. 가람은 위에 엎어져 자신을 꽉 껴안고 있는 백건의 등에 작게 주먹을 쥐고 불만을 토로하듯 콩콩 장난치듯 때리다가, 결국 여의주를 꺼낸다는 가람의 탐닥치 않은 말에 살짝 겁을 먹은 백건은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뜨거운 온기가 가득한 방안에서 백건은 숨을 가볍게 고르는 가람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작다. 얼굴도 작고, 코도 작고, 키도 작고, 심지어 그것도... 라고 말하면 그날 밤 가람이 하늘에서 이무기따위를 소환하는 날이 될것만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귀여웠다. 조그마한게 꼬물거리며 음란한 신음을 내뱉는것은. 사리살짝 웃으며 녀석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한참이나 미동없이 잠에 들은것 같았던 가람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졸린 목소리로 말을 머금었다.

 

 "씻어야 하는데..."

 "오늘은 그냥 자. 피곤하잖아."

 

 아 안되는데... 졸린 목소리로 한참이나 중얼거리던 가람이 어느새 잠에 취해버린것을 보고 스스럼없이 얼굴로 다가가 살짝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오래간만에 해서 체력이 더욱 딸린 모양인지 하고 나면 꼭 샤워 하고 잘 정도로 깨끗하던, 그렇게 청결주의를 외치던 가람이 금방 잠에 들었다. 백건은 두 눈을 감고 새근거리는 가람을 한참이나 정답게 바라보다가, 알몸으로 자면 감기에 걸릴것같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서서 바닥에 떨어져있는 이불을 끌어 조심스레 덮어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얽어 살짝 땀에 젖어 식은 옆머리를 슬쩍 뒤로 넘겨주었다. 으응,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가람이 백건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대로 백건은 가람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작은 몸이 자신의 품안에 쏙 들어가서 아주 만족스럽다는듯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소리죽여 웃었다. 몸을 웅크리고 가람은 자신이 백건의 팔을 베고 자는지도 모른채 세상모르게 색색거리며 꿈나라에 빠져있었다.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커튼을 치다만 공간에서 살그머니 촉촉한 달빛이 비집고 들어와 어둠이 많지는 않았다. 둘의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밤도 깊어져만 가서, 하늘에 떠오른 푸른별들이 반짝거리며 그 둘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방 안에서는 함께 누워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하늘에서 가장 빛나던 한 별이 달과 함께 그림자를 더욱 훤하게 밝혀주었다.

 

 

 

Pureness teens 

 

 

 

 백건과 청가람이 이런 야시시한 관계가 된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자 하면, 아주 오래전의 시간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것이다.

 

 혈기왕성한 나이의 18살 소년들은 한참이나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쌓인 어리기도 하고 동시에 머리 하나 더 있는 나이이다. 머릿속은 붉은 딱지와 새하얀 속살로 가득 채워져 있고, 침대 밑에는 부모님 몰래 숨겨놓은 비밀의 잡지들이 가득 쌓여져 있는, 그런 나이란 말이다. 거기다가 18살들은 거침없고 막힘이 없다. 하고 싶은건 실행에 옮기고, 결과에는 상관없이 물불 가리지 않고 생각없이 달려들곤 한다. 물론 상황이 마무리하고의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진다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사춘기에 빠져들어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있는 백건과 청가람도 역시 미래에 경계를 지킬 의젓해보이는 두 후계자들이라 해도 엄연히 18살에 불과한 어린 소년들이었던 것이었다.

 

 그날은 유독 덥고 푹푹 찌는 한 여름날이었다. 몇일이 지나도 결코 끝날 낌새가 보이지않는 열대야에, 유독 더위를 많이 타 더워 죽을려고 하던 현우는 멱이라도 감겠다며 조금 멀리 위치한 산속의 계곡을 찾아간지 오래였고, 은찬은 멍청아 닝겐들이여, 나처럼 은행으로 피신해라 라는 측은한 표정으로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집을 나간지 몇시간이 지난후였다. 할머니 역시 현우 옆에서 계곡 주변의 서식하는 가재라도 잡겠다며 따라 나가버리셨다. 결국 둥굴레 안에 있는건 배까고 선풍기를 튼채 자신들의 방에서 시체마냥 누워있는 백건과 가람뿐이었다. 할머니가 자신들에게 둥굴레를 잘 지키고 있으라며 임무아닌 임무를 내리고 간터라 은찬을 따라 나갈수도 없는 노릇이였고, 그저 선풍기가 조금이라도 상대방쪽으로 돌아가면 금방이라도 살인할듯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던 그 둘이었다. 누가봐도 이 둘은 전혀 친해보이지 않는 원수의 관계처럼 보였다. 개와 원숭이처럼 어쩌다 상대방이 움직이다 살결이 맞닿으면 볼멘소리로 신경질을 내기 일쑤였다. 그러던 둘의 사이는, 18살 백건의 장난스러운 몇마디로 상황역전을 해버리게 되는데 한몫을 하게 된다.

 

 "야, 청룡."

 

 한손으로 부채를 부치는 시늉을 하고, 헥헥거리며 더위를 식히던 가람이 자신의 부르는 한마디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왜 말을 걸었냐는듯 뚱한 눈빛으로 백건을 바라보다가, 뭔가 꿍꿍이가 있는듯 이죽거리며 웃는 백건이 심상치 않아 다시 한번 왜 부르냐며 질문을 던졌다. 한참이나 두 손을 머리에 받쳐 천장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 백건을 바라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말할게 있으면 지가 언젠가 말 하겠지, 라고 생각하며 가람은 다시 벌러덩 누웠다.

 

 "너 여기서 푼적있냐?"

 

 순간 말을 이어나가는 백건의 물음에 가람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뭐? 라고 다시 한번 질문을 했다.

 

 "너 여기서 혼자 풀은적 있냐고."

 

 방안에서 몇초간의 긴 침묵이 흘렀다. 한참이나 생각하다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이제서야 이해한 가람의 얼굴이 순간 시뻘게져 갈피를 못잡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끼가 더위 먹었냐고 신경질적으로 대충 대답을 해주고는 백건의 반대편으로 몸을 틀어 누웠다. 마음속으로 자신의 욕을 실컷 하고 있겠지라고 추측한 백건은 가려운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긁으며 가람의 뒷모습을 방향으로 귀에 손을 얹고 옆으로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는 은근슬쩍 몸을 옮겨 가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화들짝 놀라며 자신을 뿌리치는 가람의 모습에 꽤나 당황한 백건이었지만, 곧 이내 새끼 고양이 마냥 눈방울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과 눈빛이 닿은 모습에 씩 웃어보였다.

 

 "에이, 말해봐. 여기와서 솔직히 풀은적없지?"

 "...아니, 도대체 그런건 왜 물어보는건데?"

 "궁금하잖아,"

 

 정말 궁금해하는듯 다시 한번 더 가람의 어깨를 쥐고 놔주지 않자 가람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평소에도 왕자급 말기에다가 장난끼가 하늘을 솟는 그런 백건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눈빛이 묘한게 못내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상하다. 음산한 눈빛이 자신을 끊지 않고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여자랑은 해봤어?"

 "...야,"

 "동정이지?"

 

 그리고는 한손 한손 가람을 향해 백건이 엎드려 기어가자, 재빨리 몸을 일으켜 세워 뒤로 천천히 몸을 빼는 가람이었다. 평소같이 시덥잖은 농담이었으면 백발백중 뒷통수를 후려갈겼을텐데, 오늘따라 이질적인 느낌의 백건때문에 몸이 제 주인 마음대로 움직이지가 않았다. 무언가 위압적이었다. 뒷걸음질 치는것 마냥 한참이나 가람은 백건을 피하고 백건은 도망가는 가람을 쫓아가는데, 순간 가람의 등 뒤로 차가운 무언가가 툭 닿았다.

 

 "왜 도망쳐?"

 "아, 아니,"

 "이제 도망칠곳도 없어,"

 

 능글맞게 실실 웃으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백건을 눈치채고, 자신의 등에 닿은 것이 벽이라는것을 또다시 눈치챈 가람이 삶을 포기했다는 표정으로 백건을 다시 한번 더 바라보았다.

 

 

 

 

 

 

 

 사실 백건은 아무 생각없이 툭 내뱉은 말이었다. 당연히 가람 성격상 심드렁하게 뒷통수 한번 후려갈기고 종료될 저질스러운 대화일줄 알았는데, 의외로 꽤나 귀엽게 반응해오는 가람의 새로운 모습에 괜한 장난끼가 발동했던 것이었다. 더워서 누구 하나 잡고 놀려먹을 생각으로 물어본 질문이었다. 백건은 정말로 명백했다. 단지 자신의 머리를 강타하게 만든 청가람만의 잘못이자 죄였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폭주같은 백건에 의해 가람에겐 남에게 자신을 들어낸 처음은 애석하게도 백건이 되버렸다. 둘만의 맞닿은 체온때문에 방안은 한층 후끈거렸고, 여기저기는 가람의 흔적이 남은 휴지들이 흩어져있었다. 사실 백건의 손에 놀아날때는 좋아 죽는줄 알았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후폭풍이 몰려왔다. 친구의 손에, 그것도 남자의 손으로 가버렸다는 믿기 힘든 사실이 수치스러움을 배로 늘어나게 했고 자신을 마주보며 앉아있는 백건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 바라볼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서 백건은 꽤나 기분이 몽롱했다. 자신의 팔안에 갇혀 몸부림치는 가람의 하의를 벗기고, 생각보다 하얀 속살이 눈에 들어오니 이게 진짜 청가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벼락을 맞은것같았다. 가람을 더욱더 끌어당겨 자신의 품안에서 손으로 가게하고, 어쩔줄 몰라하는 가람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남아 날아가질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의 귓가에 흘리는 은근한 앓는 소리도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또 해보고 싶다.

 

 이때부터 였던가. 처음만 어렵고 두번째 세번째는 쉽다는 말이 그대로 백건과 가람에게 맞아떨어졌다. 수치스러움의 절정을 달리던 가람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백건의 품안에 안겨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있었고 둘째, 백건의 것도 건드리기 시작했고 셋째, 서로 처음으로 서툴게 입을 맞추며 키스를 했고 넷째, 상의를 벗고 대담하게 백건의 목에 매달려 먼저 하자 조르기도 했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몸을 섞는 단계까지 다다른것이었다. 가끔 끝나고 서로 옆에 누워 어울리지 않게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 보면 가람은 가람 나름대로 백건이 그렇게 나쁜놈은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되었고 백건은 백건 나름대로 가람이 생각보다 귀엽고 재롱도 많이 떠는 마음 여린 아이라는것을 깨닫고는 했다.

 

 엘티이급의 빠른 전개를 달리고 있는 백건과 청가람은 18살의 청춘에 맞는 '마음주기'를 하고 있었던것같다. 아니면 너무 뜨거웠던 여름때문에 둘다 살짝 콩깍지가 씌이고 몸을 부대끼고 살아서 어느새 서로가 모를 정이 들었던 걸지도.

 

 18살은 겁이 없다. 그래서 원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지만, 결론적으로 날아오를 용기를 잃고 살아가는 어른들보다는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감정에 무딘 나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그 둘은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적어도 책임이나 지자고 마음먹었다. 연인이라는 이름에 책임감을 갖고 나름대로 알콩달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어느새 창밖의 별들과 달은 희미해지고 해가 새로운 날을 데리고오며 떠오르고 있었다. 밖에선 아침을 알리는 귀뚜라미들이 또르륵 울었다. 침대에서는 피곤해 골아떨어진 두명의 남자가 서로 들러붙어 누워있는 모습이 보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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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센티넬버스 요소 있어요

 

 

 

 따스한 햇볕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나의 잠을 다정하게 깨웠다. 살짝 열린 창문 밖에서는 일찍 일어나 아침을 알려주는 작은 새들의 지저귐이 들어와 귓가를 간지럽혔다. 한참이나 잠이 달아났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있다가, 따뜻한 솜 이불의 온기에 끌려 머리끝까지 끌어당겨 덮었다. 포근하다. 어느샌가 엄마품으로 돌아간듯한 느낌에 오늘 하루가 왠지 평온하게 흘러갈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두 눈을 뜨고, 이불을 다시 내린뒤 너무나도 익숙한 하얀 천장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졸업한지 몇년이나 지난 모교의 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건가. 이제야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에 기지개를 켜고 발을 내 디뎌 나왔다. 오소소한 아침기운에 기온이 낮아 지는것 같아 옆 의자에 걸쳐져 있는 가디건을 껴입었다. 팔짱을 끼고는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익숙한 풍경의 휑한 거실. 청각을 자극하는 부엌에서의 후라이팬 소리와, 항상 아침에 시끄럽게 틀어놓았던 티비는 더이상 귓가에 들려오지않는다. 공허한 집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부엌으로 시선을 애써 돌리고 방향을 틀었다. 익숙한 서랍에서 시리얼을 꺼내고 냉장고에서는 우유를 꺼낸다.

 

 항상 똑같은 아침 패턴이었다.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 하루를 시작하는 조식을 먹다가, 깊은 생각에 빠져 시리얼이 퉁퉁 불을때까지 숟가락을 놓지않고 그 자리에 한참이나 앉아있는 패턴 말이다. 갓 만든 계란 후라이에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현실을 부정하는 자신을 혼내며 다시금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는 이 생활만으로도, 정말로 만족한다고.

 

 오늘은 하루일과의 스케쥴이 꽉 차있어 서둘러야한다. 또다시 생각에 빠진 사이 보기싫게 불어터진 시리얼을 눈치채고, 잠시 표정을 찡그리다가 하수구에 가차없이 그릇을 쏟아부었다. 준비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옷가지를 가지고 욕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따뜻한 물에 몸을 적시고 나면 기분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은 실낱같은 희망에 오늘도 나는 도박을 걸어본다. 

 

 짧게 친 잿빛 머리를 드라이기로 대충 말리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뜨거운 수증기 때문이 서리가 뽀얗게 낀 거울에 내 모습은 흐릿하게 잘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거울에 손을 뻗어 검지로 너의 이름 세글자를 천천히, 한글자 한글자 소중히 써본다.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하루도 빠짐없이 너의 이름을 거울에 쓴 탓에, 미세하게 나의 지문이 남아있는게 보인다. 또다시 한참이나 너의 이름을 쓴 거울을 문지르다가, 너가 좋아하는 짧게 친 머리를 드라이기로 다시 한번더 말렸다. 고등학생때의 긴머리도 좋지만 역시나 얼굴을 더욱 더 자세히 볼수있는 짧게 친 머리가 좋다며 싱그럽게 웃던 너의 모습이 눈앞에 흐릿하게 그려진다. 그때부터 나는 머리가 길어 귀를 덮기 시작할때마다 단정하게 다듬는다. 혹시라도 너랑 만날 날이 온다면, 내 머리를 보고 환하게 웃는 너의 모습을 한번 더 보고싶어서.

 

 한겨울에 가디건 하나만 걸치고 나가면 온갓 이상한 시선들을 다 받을것 같아 카키색 야상을 위에 챙겨 입고, 덤으로 빨간색의 목도리도 둘렀다. 추위를 잘 타는 편은 아니지만 오늘 하루종일 밖을 돌아다니려면 어느정도 준비를 해놔야할것같아 지갑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신발장 앞에 앉아 운동화를 신고 끈을 묶었다. 중간에 욕실불을 안끊것이 문득 생각이 나서 허겁지겁 다시 벗어야했지만.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꽤나 사나운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불어 들어왔다. 얼굴에 부딪히는 차가운 기운에 살짝 찌푸리며 발걸음을 목적지로 옮겼다. 정말 언제 이렇게 한 계절이 빨리 지나갔는지, 헐벗은 나무들과 아무도 없이 텅빈 거리를 보니 확실히 겨울이 찾아왔다는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도 이랬었나. 그날 너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도 너가 즐겨입는 져지를 걸치고 있었던가. 이럴줄 알았으면 조금 더 너의 소유물에 관심을 둘껄 그랬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한들 어쩌겠나. 그저 웃어넘겼다. 바보같은 그 져지와 세트인 츄리닝 바지를 입고 촐랑거리며 돌아다니던 너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오래간만에 다다른 버스 정류장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너무나도 평범하게 돌아가는 일상이여서 그런지 익숙하지 않아 잠시 이질감이 들었다. 멍하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지나가는 사람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지각을 한건지 교복을 입고 허겁지겁 뛰는 남학생과, 뒤에서는 회사서류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 한 중년. 귀에는 두 이어폰을 꽃은채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여자도 보이고, 영단어를 입안에서 중얼거리며 외우고 있는 한 대학생도 보인다. 여기에 너무나도 평범한 생활을 하며 머무르고 있는 나는 과연 옳은걸까. 후계자로 다시 돌아가야하는건 아닐까. 너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이 신분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던걸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복잡하게 털뭉치처럼 꼬여와 챙겨온 이어폰을 꺼내 두 귀를 막아버렸다. 너무 오래간만에 생각하는 어지러운 생각들이라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리며 교묘하게 내 신경을 콕콕 찔러온다.

 

 버스에 몸을 싣고 덜컹거리는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버스안에 나오는 따스한 히터바람이 살짝 졸리게 만드는것같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너의 얼굴이 더욱 내 눈앞에서 맴도는것 같기도 하다. 한번만이라도 내 앞에 나타나줬으면. 소원이라는 말을 가장한 무지함을 가진 내가 참으로 한심해져 바로 생각을 접어 꼬깃꼬깃 마음속 깊이 던져두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꺼낼 일이 있으면, 바로 꺼낼수 있도록 마음의 첫번째 서랍에 넣어두는것도 잊지않고 말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고는, 고개를 들어 멀리 시선을 옮겼다. 발에 채이는 돌맹이들을 한참이나 발장난을 치다가, 내 십년을 함께 했던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둥굴레.

 

 내 일생의 삼분의 일을 함께했고, 처음으로 너를 만났고, 너가 센티넬이었고 내가 너의 가이드였다는것을 인식한 그곳. 내 삶의 가치관을 바꿔주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들어주고 또한 잊을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깨닫게 해준, 지금은 폐허가 되어 주인을 잃은 중앙을 향해 나는 천천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둥굴레였다. 그래서 그런걸까. 이곳에 와야한다는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감싸안은 아픔을 밀어내면서도 인지한것은.

 

 끼익, 녹이 슬어 닳은 문을 열고 먼지가 쌓인 마당을 향해 걸어왔다. 몇년이 지나도 이곳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지붕의 기와가 낡아 떨어져 비가 세도 고치는 사람 없고, 먼지가 쌓여도 잡초가 나도 그 누구하나 관리하는 사람 없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둥굴레라는 이 곳은 평생 후계자들의 기억속에만 남아있게된, 그런 평범하고 낡아 빠진 중앙으로 바뀌게 된것이었다. 향수 아닌 향수에 젖어 한참이나 대청마루에 앉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엌에서 너와 함께 티격태격하던 그날이 떠오른다. 요리를 잘하던 너는 미역국에 굴을 넣는다 하고 나는 소고기를 넣으라 하며 옥신각신 했던 날 말이다. 서로 옳으니 그르니 다투며, 굴을 넣으면 국물 맛이 살아난다는둥, 나중에 데워먹어도 맛있다는둥 이런 얘기를 오갔더랜다. 키가 작은 너를 상대로 굴을 손으로 잡아 천장 위로 올리고 가져갈테면 가져가라는둥 시덥잖고 유치한 장난을 하다가 국자로 맞기도 하고, 해볼테면 해보라는 표정을 짓고 비열하게 웃는 나를 보고 열받아 결국 여의주를 꺼내려는 너를 저지했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결국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를 넣고 옆에서 흐뭇하게 미소 짓는 나를 보고는 소리친 너가 떠오른다.

 

 '바보야, 굴이 정력에 좋다고!'

 

 얼굴은 잘 익은 사과마냥 시뻘게져서 신경질적으로 화내듯이 내뱉던 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풋, 하고 웃었다. 그때 당시의 너는 얼마나 재롱쟁이였는지 너는 모른다. 항상 너는 현우나 은찬을 엄마마냥 잘 챙겼고, 나를 그 둘의 뒷전으로 하는 것 같은 소심하고 서운한 기분에 너에게 신경질을 낸것도 기억이 난다. 괜한 심술이나 끼부리고 다니지 말라는 나의 말에 두 눈을 부라리며 내가 언제? 라고 대답한 너 역시 기억이 나기도 하고 말이다. 

 

 그날 미역국을 끓인 이유도 다 내 생일이였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왜 이렇게 늦게 알아챈걸까. 또한 나의 심술에 항상 혼자 서운해하고 속상해한 너를 눈치챘으면 더욱더 잘해주었을텐데. 항상 너는 내 곁을 맴돌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등잔밑이 어두운것처럼 항상 당연시 여기고 감사하게 여길줄 몰랐었다. 조금 더 너를 이해하는 마음을 용기있게 한발자국이라도 내딛였으면 이렇게 후회는 없었을텐데, 하는 바보같은 후회를 해본다. 너무나도 어린 나이의 과거에 있는 백건에게 성과없는 잔소리를 퍼부어본다. 이런 너의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였다. 이제서야 모든걸 깨달은 나는 결국 너를 그리워하는 마음만 한층 더 쌓여간다. 이루 말할수 없는 처량한 기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발걸음을 또다시 옮겼다. 겨울의 세찬 바람이 하늘로 부터 불어온다. 마치 나에게 할말이 아주 많다는 것처럼.

 

 "...백건?"

 

 누군가가 뒤에서 나의 이름을 불러와 고개를 틀었다. 오래간만에 듣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잠시 침묵으로 나를 부른 장본인을 쳐다보았다. 그 녀석도 만만치 않게 놀랐는지 인사를 하는것도 까먹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빨간머리의 그 녀석.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한참이나 고민중이었는데, 이 고민은 녀석도 마찬가지였는지 얼음처럼 굳은 표정이 보였다.

 

 "오래간만이다."

 

 한참이나 조용하던 침묵을 깬건 은찬의 첫 한마디었다. 가람과 있었던 일들을 샅샅이 다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중 한명인 은찬이 오늘 이곳에 찾아올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면할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조금 더 놀란 탓도 있었다. 은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조금 더 수척해진것 빼고는, 달라진것이 없이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은찬도 만만찮게 마음고생을 꽤나 했을꺼다. 몇년을 함께 해온 친구를 잃는것은 행복한 일이 아니니까. 무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드리는 모습이 잔혹해보여도 문드러가는 마음을 혼자 참기 힘들었을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현우는 벌써 왔다갔어."

 "...아, 그래."

 "...건아,"

 

 시간이 별로 없다. 손목에 찬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은찬을 지나쳐 찻집을 향해 걸어갔다. 하늘나라와 가까운 중앙을 향해 걸어갈수록, 가슴이 물에 찬듯 숨이 가빠졌다. 입술을 깨물고, 오른손으로 심장을 부여잡는다. 뒤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은찬의 시선이 느껴진다. 발목에 돌을 달아놓은것 마냥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몸에는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눈앞이 흐려져 간다. 아아, 나는 또 이렇게 무너져 가는걸까.

 

 "백건,!!"

 

 결국 찻집의 문조차 열지 못한채 그 바로 앞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은찬이 달려와 주저앉은 내 옆에 다가와 나에게 괜찮냐며 다급하게 묻는다. 주변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맥박치는 충동에 나는 구렁텅이로 빠지는 느낌이다. 시간은 이렇게 지나서, 괜찮아진줄 알았는데. 내 정신을 컨트롤 할수 있는 힘정도는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과거를 지워내듯이 미세하게 마음으로 끊어놓은 줄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잡고 있었다는걸 왜 이제서야 깨달은걸까. 약해짐이 반복하더라도 과거의 옮매임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은찬아,"

 

 가까스로 닫혀진 입을 벌리고 은찬을 불렀다. 은찬은 모든것을 다 안다는 눈빛과 동시에 개미지옥에 빠진 표정으로 날 애타게 바라보았다. 또다시 반복하지 말라는듯 녀석은 다급하게 나의 부름에 대답을 해왔다. 어, 건아. 왜. 왜, 녀석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온다. 아무렇지 않은척 하는 모습이 참으로 모순이다. 어쩌면 거짓이 진실보다 아름다운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가람..."

 

 그리고 나는 일년동안 절대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던 그 세글자를,

 

 "...먼저 가버린 그 멍청이가 보고싶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그리움과도 같은 것과 함께 토해내며 울부짖었다. 녀석이 언제라도 뛰쳐나오며 나를 반겨줄까봐, 웃으며 나에게 인사해줄까봐 도저히 중앙의 문을 열수가 없었다. 녀석과 여기서 함께 생활한 시간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매섭고 날카로울정도로 그리움이 사무치게 파도처럼 몰려와 내 자신을 견뎌낼수가 없어서 그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아 아이마냥 눈물만 쏟아내었다. 너와 함께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사계절이 나에게는 매일매일이 꽁꽁 얼어버린 겨울로 변해버렸고, 너와의 추억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눈처럼 녹아져 버린다. 조금만 참으면 봄이 오겠지, 눈이 다 녹으면 새로운 계절이 올거라고 자기 위안을 해봐도 젖은 뺨을 매서운 칼바람으로 때리기만 할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지금도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기만 한다. 너의 기분좋게 환하게 웃어주던 그 미소가.

 

 현실이 가혹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세상이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안에는 시기와 질투, 이기심에 물들여있는 붉은 세상이지만 나는 또 이렇게 하루를 물 흐르듯 평범하게 보낼것이고, 흐려져 불투명한 내일과 그 다음날도 아무일없이 시간에 몸을 맡겨 편안하고 순탄하게 지나갈것이라고 믿는다.     

 

 애석하게도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상걸릴듯이 꽁꽁 얼은 손을 내밀어 내리는 눈을 살짝 건들여보았다. 너무나도 약하게 금방 물로 녹아버리는 눈이 마치 주인을 만난듯 해보였다. 옆에서는 은찬이 가만히 앉아 나와 함께 내리는 눈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지금 위에서 나를 보고 있을까. 나를 보고 싶어 하진 않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너도 나를 이렇게나 많이 좋아했을까.

 

 너가 없는 사계절을 보내고 이렇게 또 다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게 될것이다. 언제쯤 너를 잊을려나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너의 향수에 빠져나오지 못할거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언젠간 만날수 있겠지. 나중에라도, 내가 둥굴레 문을 직접 열수 있게 된 시간쯤이면 너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또다른 목표를 세우고 시작을 한다. 

 

 너가 중앙에서 죽임을 당한지 일년째 되는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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