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금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다. 질투와 시기심, 간사함을 고스란히 마음 한쿠석에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떤 부류의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상대방에게 표출함으로써 욕심으로 가득 쌓여있는 큰 덩어리를 뱉어낸다. 마나미 산가쿠도 그 인간 중 하나의 동물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치면, 자신의 소유라고 오롯이 믿고있는 연인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때때로 작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곧 이어 반응이 없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연인을 보면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담긴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한다.

 

 토도 진파치 또한 욕심으로 둘러쌓인 인간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것을 몸소 깨닫기 위해 셀수없는 남녀들과 몸을 섞곤한다. 자신이 언제든지 돌아갈수 있는 옆자리에 번듯한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사람만 바라볼수 있다는 시답잖은 발상을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떠날 낌새를 조금이라도 흘려보내거나 냄새를 맡으면,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말로 상대방을 도망칠수 없는 족쇄에 가둬버린다. 당신은 내 소유야. 내가 이렇게 불순한 인간이여도, 당신만큼은 내 옆에 있어야한다. 토도 진파치는, 어쩌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잔혹한 사람일수도 있다고 주변인들은 말한다.

 

 그 날 새벽은, 그 흔한 별들조차 조각구름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달도 보이지 않아 가로등이 꺼진 골목들은 앞이 안보일정도로 어두컴컴했고, 새까만 연필심으로 여기저기를 그어놓은듯한 구름들이 잔뜩 모여져서 어지러웠다. 털실이 서로 엉킨것처럼 복잡한 하늘은 정말이지 마나미 산가쿠의 기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데 한몫을 충실히 하는듯 보였다.

 

 익숙한 문에 열쇠를 넣고 천천히 돌렸다. 어디서 복사한듯한, 녹이 슬어 구릿빛을 띄는 열쇠가 쨩,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문이 열리고 마나미는 몸을 안으로 들어섰다. 딱히 쾌적하거나 편안하다고 전혀 느낄수 없는 집안을, 마나미는 무언가 알수없는 감정을 지닌 두 눈으로 하나하나 관찰하듯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 앞에 있는 신발장을 확인했다.

 

 "...선배."

 

 마나미는 무릎을 굽혀 처음 보는 구두를 두 손가락으로 잡아 눈 앞에 들어보았다. 마치 오늘 아침 닦은 것 마냥 광이 나는 검은색 구두를 한참이나 눈앞에서 경멸스럽다는듯 흔들어보이다가, 텅빈 눈으로 거실에 열려있는 유리창을 향해 힘껏 던져 버렸다. 와장창, 유리파편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지만, 마나미는 신발을 고스란히 신은 채 집안으로 한발자국 발을 디뎠다. 한걸음 걸을때마다 마나미의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단정해 보이도록 짧게 자른 머리와, 아직 어린티를 벗지못한 몸에 딱 맞는 교복. 마나미는 익숙한 경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항상 이런 틀이야.

 

 굳게 닫힌 방문은, 마치 열지 말라는듯 마나미의 머릿속을 요동쳤다. 제자리에 굳은듯 가만히 있던 손은 점점 목적지를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보고 싶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순인 상황에 마나미는 방문을 힘을 실어 열었다. 끼익. 방문이 여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미는, 한층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선배."

 "마나미?"

 

 방 안은 뿌옇게 물든 담배 연기로 맑은 공기를 찾아볼수 없었다. 얼마나 피워댔는지, 알몸으로 속옷만 입은채 입에 담배를 물고 누워 있는 토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과 함께 했던 이불은 누구라도 알아챌수있도록 시뻘겋게 물든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사이사이에는 몇시간의 정사를 증명하듯 뿌옇게 말라 붙은 한 수컷의 욕망이 넘쳐있었다. 마나미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토도를 바라보았다. 마나미의 시선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일도 없을거라는듯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앉아 다리를 꼬는 토도였다. 하얗고 기다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고 마나미를 위로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눈꼬리가 반달마냥 휘어지게 눈웃음을 치는 토도를 보고, 헛웃음을 치는 마나미였다.

 

 "...이 씨발년이..."

 "마나미, 뭐라고?"

 "상황파악 못하고 말이야."

 

 짝, 소리가 크게 들리고, 담배가 밑으로 떨어지는것과 동시에 토도의 얼굴이 사정없이 돌아갔다.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듯 능숙하게 바닥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되돌린 토도가 입을 열었다.

 

 "담배 아깝잖아."

 "......"

 

 마나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을 억눌렀다. 닳고 닳아 지저분한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는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가 사랑스러워 부셔버리고 싶기도 하다. 당신은 내 소유잖아. 내 연인이잖아. 내 사람이잖아. 내 것이잖아?

 

 "오늘은 너가 하지말라해서, 그 맨날 파란 넥타이 매고 오는 아저씨랑밖에 안했어."

 "...뭐?"

 "이정도면 많이 착해진거지? 응?"

 "......"

 "칭찬해줘, 응? 마나미-,"

 

 애원하듯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그가 좋다. 그를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이 막연하다. 자신의 허리를 안고는 살살 쓰다듬는 그를 부셔버리고 싶다. 그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헛된 희망따위 이미 버려버렸지만 큰 아량을 베푸는듯 그는 자신을 마르게 한다. 목이 탄다. 그가 고파지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내 애인 올거라고, 이제 집에서 나가라고 하니까 놀라서 구두도 안신고 허겁지겁 나가더라구."

 "선배..."

 "그 모양새가 너무 웃겼어."

 

 깔깔 웃으며 마나미의 허리를 더욱더 끌어당기다가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바라본다. 지그시 마나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강아지를 귀여워 해주는 주인처럼. 자신에게 충실한 개를 칭찬해 주는것 처럼,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쓰다듬어 내려준다. 마나미는 아찔하다. 그의 손길이, 그의 시선이, 그의 체온, 이 모든 것이. 기분이 붕붕 떠올라 겉잡을수가 없다. 견고하게 자라나는 이 감정이 해로운 독에 취해버린것만 같다.

 

 "선배...나 사실 오늘, 말할거 있어서 왔어요."

 "뭔데?"

 

 이제는 자신의 바지 앞섬을 지분거리며 장난치는 그에게 말을 건냈다. 좀 더 빨리 결정내렸으면 좋았을껄. 좀 더 빨리 이 옭아매는 관계를 불태워버렸으면 좋았을껄. 하지만 이 모든것이 끝이다.

 

 "헤어져. 이제 끝이야."

 "...마나미?"

 "이제 내가 찾아온다는 생각하지마요. 난 선배의 개가 아니니까."

 

 그리고는 거칠게, 당신을 밀어낸다. 처음으로 당신의 표정은 아무 감정을 띄지않은 표정으로 바뀐다. 항상 재잘거리며 입을 가만두지 않았던 당신이, 참으로 조용하다. 그리고 예상했던것처럼 당신은 히죽거리며 웃음소리를 뱉기 시작한다.

 

 "넌 내가 다른사람들이랑 섹스하는게 싫은거지."

 "......"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고, 내 결정이야."

 

 그리고 당신은, 못을 박는듯 말한다.

 

 "그리고 난 너가 나한테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걸 알고 있어."

 

 나는 당신의 마음없는 말에 혼자 일렁이다가,

 

 "개새끼야."

 

 당신의 마지막말에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로 자기자신이 너무나도 처량해지고 원망스러워서, 당신에게 죽일것처럼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반항심이 들어서 당신의 목에 새겨져있는 붉은 키스마크의 주인을 죽이듯이 졸랐다. 당신은 어쩐지 행복한 표정이였다. 모순이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초라한 생명줄을 나에게 맡기는 당신이 헤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신때문에 화가 나고, 처음으로 간섭하고 처음으로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점점 눈을 감는 당신의 얼굴로 나의 두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지닌 당신의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치 이런 결말을 원한것처럼, 너무나도 편안하게 눈을 감고있는 그가 눈앞에 보인다. 나 역시 두 눈을 감는다. 그 흔한 해피 엔딩 스토리처럼, 우리는 행복으로 끝날수는 없는걸까.

 

 과연 옳은것인지, 틀린것인지 그 누구도 알수없는 우리는,

 

 패러독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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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금 주의 

(부제_천천히 노래하듯이 너와 나는,)

 

 

 

 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촉촉한 달빛에 젖어있는 창밖으로 아라키타는 부드러운 잎사귀 위 빗방울의 아른거리는 빛을 느낄수 있었다. 팔꿈치를 괴고 누워 아라키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튼을 양쪽으로 젖혀 창문을 연 틈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있었다. 자신 옆에서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토도의 실루엣에서는 움직임을 찾을수 없었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나뭇잎들의 속삭임이 그들의 방을 둘러싸는듯 했다. 천천히 아라키타는 눈을 다시 감고 그의 주변을 감도는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잔잔한 새벽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귀뚜라미의 힘찬 울음소리가 이제는 잠잠해져 토도의 새근새근 거리는 숨소리에 자리를 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니 잘만 자네.

 

 아까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밑에서 신음을 내뱉던 토도의 음란한 표정을 생각하니 다시금 자신의 아랫도리가 불끈할것같아 심호흡을 했다. 살짝 볼이 빨개진 아라키타가 흐트러진 토도의 앞머리를 다정한 손길로 뒤쪽으로 쓸어주었다. 부드럽게 손가락사이로 빠지는 토도의 머릿결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리띠를 아직까지도 착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민트색 머리띠를 조심스럽게 빼주었다. 넌 귀 뒤도 안아프냐. 중얼거리는 아라키타의 혼잣말에 마치 대답하겠다는듯 으응, 작은 소리를 내며 토도가 잠결에 어리광을 부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아라키타의 품에 스스로 파고들었다. 아라키타의 체온이 따뜻한지 부비적거리는 토도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말랑거리는 마시멜로같은 감촉에 손가락까지 녹아버릴것만 같았다. 한참을 토도를 괴롭히다가, 기지개를 키고 하품을 했다. 뻐근거리는 온몸에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잠이 오질 않는다. 오늘은 다른날보다도 늦게 끝나 피곤할법도 한데 정신이 멀쩡하다. 말똥말똥한 눈으로 별 스티커가 잔뜩 붙혀진 천장을 보았다. 몇개월전 둘이 동거하기 시작한 날에 토도가 난 이거없음 못잔다며 하루종일 징징거리는 바람에, 의자에 발을 딛고 올라가 낑낑거리며 겨우겨우 붙힌 촌스러운 야광별 스티커였다. 유치원생같다며 토도를 실컷 놀렸지만, 다 무시하고 만족스럽다는듯 밤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뿌듯해하던 토도를 보면 자신까지 웃음이 터져나오는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아라키타는 한참이나 예전 추억에 빠져 혼자 실실거리다가, 옆에 놓여있는 탁자로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는것을 찾아 더듬거리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 불을 붙혔다. 방안에 담배냄새가 배일것같아 조심조심 토도가 깨지않게 조용히 베란다 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왔다. 선선한 바람을 쐬며 후, 연기를 내뱉고는 난간을 잡고 멀리 펼쳐진 경관을 바라보았다. 밤이여서 그런지 중간중간에 가로등이 켜져있는 불빛들이 보였다. 마치 세상이 죽은듯 조용했다. 한참이나 비가 내려서 일지도 몰랐다. 메마른 땅이 촉촉하게 젖어있는것이 보이고, 귀뚜라미가 다시금 울기 시작했다. 아라키타는 담배를 다시 한번 들이마시며 물방울에 젖은 난간을 만지작거렸다.

 

 자그마치 5년이라는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세월이었다. 졸업하고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술을 들이마시고, 결국 술에 취한 토도와 한바탕을 하고나서야 자신의 감정을 깨달았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20살의 청춘이 원체 이렇게 불타오르는건지. 알수없는 자신의 행동이 그 당시에는 정말로 당혹스럽고 미웠지만, 지금 이렇게 5년이라는 시간을 지나가니 예전의 자신의 행동이 참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시츄에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분명 지금 자신의 옆에는 토도 진파치라는 사람이 없었을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라키타는 피식, 웃었다. 우리 이쁜이.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고 아라키타는 소름이 돋아 고개를 이리저리 저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뜨거운듯했다.

 

 술에 취해 둘이 한바탕을 하고 다음날 아침은 정말 지옥이라면 지옥이라고 믿을수 있을정도로 둘다 당황스러움에 미칠것 같은 날이었다. 하얀 액체가 들러붙어 여기저기 묻어있는 침대 시트에, 침대 이불은 발밑에 떨어져있었고, 퉁퉁 부은 서로의 입술과 서로의 몸에 쉴새없이 만들어져있는 키스마크에 3차충격, 토도의 허벅지에 허옇게 노골적으로 들러붙은 자국들이 결정적인 증거였다. 먼저 잠에서 깬건 토도였다. 얼얼한 엉덩이와 뻐근한 허리에 추가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려 잠에서 깨니, 세상모르게 옷은 어디다 뒀는지 벌거벗고 자신의 옆에서 쿨쿨 자고있는 아라키타가 눈앞에 보였다. 이게 무슨일이야... 혼자 중얼거리며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술때문에 두통이 있는 머리를 부여잡고 상황파악을 하는데, 자신의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것을 눈치채고 놀라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다시한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던 아라키타의 벗은 몸을 보고, 자신의 벗은 몸을 보고. 점점 표정이 일그러져가며 토끼눈이 되던 토도는 부들부들 거리다가, 소리를 지르며 머리맡에 있던 배게로 아라키타의 머리를 내리치며 아라키타 이 씨발새끼야!!!!!!!!, 라며 소리를 질렀단다. 그 뒤에 토도의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 상황파악 못한 아라키타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라며 야속하게 말을 해 토도에게 욕을 먹으며 또다시 배게로 얻어맞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한바탕 토도의 폭력아닌 폭력에 얻어맞은 아라키타는 또다시 엉엉 아이마냥 울어제끼는 토도때문에 애를 써야했다. 엉덩이가 아프다며, 난 이제 남자도 아니라며, 나 책임지라는 울먹거려 못알아들을것같은 토도의 징징거림에 아라키타는 안절부절하며 토도를 감싸안았다. 사실 자신도 이게 어떻게 된일인지 이해가 다 안됬는데도, 다짜고짜 자신을 때리며 울먹거리던 토도의 태도에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얼른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데, 아라키타의 머리를 관통한건 토도의 한마디였다. 자신의 품안에 안겨 질질 짜던 토도가 눈물이 맺혀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고개를 올려 자신을 쳐다보며 말한 단지 그 한마디로, 아라키타의 인생은 탈바꿈 한것이었다.

 

 나 좋아해?

 

 물론 대답은 정해져있었지만 말이다. 그 말에 아라키타는 얼어붙었고, 토도의 그 한마디에 의해서 아라키타는 얼떨결에 토도가 원하는 대답을 천천히 상대방만 들릴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천히 입을 열며 대답하는 아라키타에 토도는 표정이 점점 풀어져 결국은 또다시 울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아라키타!!!!!!라고 비명을 지르며 목을 꽉 끌어안았다. 자신의 목을 꽉 끌어안는 토도에 아라키타는 천천히 손을 뻗어 토도의 등을 쓸어주었다. 대낮부터 아침드라마를 찍는듯한 느낌에 아라키타는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것만 같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해프닝이야. 그렇게 몇시간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았던 아라키타였다.

 

 그날 이후로 처음에만 조금 어려웠지, 두번째부터 몸을 섞는거는 쉬운일이었다.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샌가 입을 맞추고, 혀까지 섞어가며 겪하게 서로의 입술을 탐하면 자연스럽게 아라키타가 토도를 밀어 눕혀 정신없이 몸을 섞었다.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랑 하는 관계는 꽤나 기분이 좋았다. 그만큼 쾌락도 따라오고말이다. 아라키타는 그제서야 자신이 토도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것이라고 인정하고 깨달았다. 고등학교 시절 토도가 계속 신경에 쓰이고 눈앞에 아른거리는것도, 안좋은 일이 있으면 옆에 함께 있어주고 싶은것도, 가끔은 꿈속에 토도가 나와 몽정을 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 모든 것들이 토도를 향해 좋아하는 감정이 있어서라고, 단정지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한것같았다. 그리고 이건 짝사랑이 아니라, 맞사랑이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라키타는 20살의 어린 자신을 추억하다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고, 철도 들고해서 25살을 먹은 이제서야 제대로 토도를 사랑해줄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자신은 참으로 순수했고, 솔직했다. 20살의 불타는 청춘은 아무도 막을수 없었다. 이제서야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드린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보다는 힘든일은 없었고 눈물나게 서러운 일들을 겪지 않았지만, 아라키타는 만족했다. 또한 조금더 느긋해지고 나른해진 자신을 마주하니 기분이 꽤나 좋아졌다. 갑자기 아까전까지만 해도 옆에 누워있던 토도가 보고싶어져 담뱃재를 끄고 다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베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뒤에서 확 끌어안았다.  

 

 토도,

 왜 여기있어...얼른 들어와 춥잖아...

 

 아직 잠이 덜깨 자신의 등에 얼굴을 뭉개고 웅얼거리는 토도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아라키타는 등을 확 돌려 토도를 품에 안았다. 또 담배폈어? 작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콩콩 치며 볼멘소리로 신경질부리는 토도가 사랑스러워 푸하하, 웃으며 토도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달빛이 발코니로 들어와 토도의 얼굴이 어둡지않게 잘 보였다. 다정하게 웃어주며 토도의 허리를 감으며 서로의 눈을 맞췄다.

 

 좋아해,

 

 뜬금없는 아라키타의 고백에 토도는 잠이 확 달아나 찹쌀떡마냥 흰 두 볼이 홍당무가 되어 갑자기 왜이래? 라며 모면했다. 뒤에 짧지만 나도...라는 조용한 토도의 말에 아라키타가 행복한듯이 웃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거 먹어.

 어?

 

 아라키타의 한쪽 손에 들린 담배를 뺏고는 자신의 주머니 안에서 츄파츕스를 하나 꺼내 아라키타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담배피지 말라고 멍청아,

 

 사탕의 껍질을 까고는 아라키타의 입에 쏙 넣어주는 토도였다. 흐뭇한듯 손을 내밀어 아라키타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주는 토도에 아라키타는 당황스러워 사탕을 입에물고 자신에게 사탕을 건낸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토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사탕을 입에서 빼고 토도의 입으로 돌진했다. 순간 달콤한 맛이 퍼지는 기분좋은 느낌에 토도는 까치발을 들어 아라키타를 놓치지않을려고 필사적으로 아랫입술을 살짝 물었다. 달달한 타액이 섞이고 아라키타는 토도를 베란다 문으로 밀어 오른 무릎으로 토도의 중심지를 꾹 눌렀다. 살짝 놀란듯 신음을 흘리며 아라키타의 목에 팔을 감아오는 토도에 아라키타는 토도의 잠옷 안으로 손을 밀어넣었다.

 

 하으, 아라...키타아...침,침대로...

 

 딸기우유맛 사탕은 마치 토도처럼 달콤하고 달았다. 아라키타의 손에 들린 사탕은 이미 바닥을 곤두박질한지는 오래였고, 아라키타는 베란다 문을 열고 토도와 여전히 입을 맞춘채 침대로 밀었다. 아윽, 넘어지는 감각에 토도는 숨을 가쁘게 쉬며 아라키타를 더욱더 애타게 불렀다. 좋아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입을 맞췄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너가 나의 소유물이라니.

 

 문을 닫지 않은 발코니에서 선선한 새벽바람이 방안으로 불어들어왔다. 후끈후끈한 방 공기와 섞여 딱 적당한 온도를 유지시켜주는데 한몫을 한것같았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도 당당하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수있다. 5년동안 고마웠고, 나머지 일생도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싶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딸기우유맛 사탕보다도 훨씬 달콤한것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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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8

 

 

 흰나비가 나와 당신의 사이에서 너풀거린다.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푸른하늘을 날라다니는 흰 나비들을 지그시 바라보다, 항상 그 제자리에 있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색색가지의 꽃들 사이에서 둘러앉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손가락으로 나비의 형상을 쫓는 당신에게, 나비 한마리를 손에 가두어 건내주었다.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웃는 당신 앞에 있는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행운을 가진 사람이다. 나비를 손에 얽으며 장난치는 당신의 어깨를 톡톡 쳤다.

 

 이제부터 여기는 당신과 나의 비밀의 정원이예요.

 

 다정하게 웃어주는 나에게 몇초동안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이내 밝게 웃어주며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리는 당신이다. 그래. 이것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뒤에서 당신을 끌여당겨 꽉 안았다. 말갛게 물든 당신의 얼굴이 보인다. 행복에 젖어서, 기분이 설탕에 절인것마냥 달았다.

 

 

D-7

 

 

 토도상,

 

 역시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당신을 확인하고는, 손을 반갑게 이리저리 흔드는 당신에게로 걸었다. 숲속에서의 당신은, 푸른 잎사귀들과 어울려져 한층 더 싱그럽다. 일분 일초도 아쉽다는듯 나는 당신에게로 걸음을 빨리하여서 뛰어간다. 오늘은 일찍 왔네, 마나미? 귀를 녹아버릴듯한 달달한 목소리로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당신에게, 밭은 숨을 고르며 짧은 입맞춤을 한다.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우아한 당신이 내 소유라는것을 오롯이 인지하니, 너무나도 기분이 좋아져 버려서 다시 입맞춤을 한다. 좋아해. 좋아해요. 수천번을 해도 모자를 이 짧은 세글자를 연신 내뱉는다. 당신은 나의 서투른 고백에 다정하게 웃어준다. 좋아해요, 토도상. 평생 내 앞에서 사라지지 말아요. 하지만 당신은 내 애원을 듣지못한듯, 웃음을 머금은채 숲속에 사는 아기 고양이를 연신 쓰다듬을 뿐이었다.

 

 

D-6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르게도, 정원을 들어가니 당신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물뿌리개로 꽃에게 물을 주고 있었다. 보라빛을 내는 아이리스와 푸른 물망초들이 서로 엉켜 예쁜 색깔을 띄며 자라나고 있었다. 잎사귀 끝끝에 맺힌 물방울들이 똑, 하며 땅으로 곤두박질쳐졌다. 당신이 물을 주는 사이,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꽃들의 향기를 맡았다.

 

 보라색이 좋아.

 

 당신은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D-5

 

 

 창밖에선 비가 내렸다. 커튼을 젖히고, 정신없이 당신의 형상을 찾았다. 우리들의 정원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저 바람에 흔들거리며 처량하게 나를 반겨주는 당신의 꽃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당신은, 어느곳에도 없었다. 비가 계속 추적거리며 내린다. 결국 난 오늘, 당신과 나만의 정원에 방문하지 않았다.

 

 

D-4

 

 

 하늘은 참으로 무심하다. 어제 그렇게 비를 쏟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보고싶었던 하늘은 맑은 하늘이 아닌, 어두침침한 회색빛의 하늘이었다. 창문을 양쪽으로 제치고 손을 내밀어 손바닥으로 추락하는 빗물을 느꼈다. 한참이나 비의 온기를 느끼던 나는, 정신을 퍼뜩 차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침을 먹으라는 누군가의 부름을 무시하고, 우비를 뒤집어 입은채 정원을 향해 달렸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뛰어서 옷이 축축하게 젖어가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없었다. 오늘도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토도상,

 

 조용히 물을 머금은듯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신이 심은 꽃들의 팔랑거림뿐이었다. 순간, 내 다리 아래에서 자신의 몸을 비벼오는 한 생물체가 있었다. 당신이 자주 밥을 주며 귀여워해주었던 아기고양이였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작은 생물체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갸르릉거리며 기분이 좋다는듯 머리를 비벼오던 아기 고양이에게 물었다.

 

 토도상은 어디갔니.

 

 쓰다듬어 주는것을 멈춘 나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동그란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맑은 두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나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듯한 구슬픈 두 눈이 문득 당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참이나 당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다가, 빗물에 잔뜩 젖은 아기 고양이를 조심히 안았다. 냐옹, 내 품에 안겨 부비적거린다. 그대로 일어나, 물에 젖어 질척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길을 되돌아 걸어갔다.  

 

 

D-3

 

 

 밤새 잠에 깊히 청하지 못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서, 한밤중에 침대에서 깨어나 두 눈을 떴다. 머리맡에서는 정원에서 데려온 아기 고양이가 잠에 취해서 쌔근쌔근거리고 있었다. 방안에 펼쳐진 어둠은 고독을 덮칠만큼이나 두려웠다. 어서 빨리 침대에서 발을 딛고 일어나 창문을 향해 걸었다. 손에 닿는 커튼을 힘을 쥐어 잡아서 젖혔다. 촤르륵, 양옆으로 실크빛의 커튼이 찰랑거리며 젖혀지는 소리가 들리고, 어두운 밤 사이로 하늘을 밝히는 청아한 달빛이 방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왔다.

 

 보고싶어...

 

 보고싶다. 보고싶다. 보고싶다. 당신이 눈앞에 연신 아른거려서, 혼이 빠질것만 같은 기분이다. 사실 악몽을 꿔서,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끔찍한 꿈을 꿔서 잠을 청하지 못할것 같다.

 

 주문을 걸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 당신이 나를 향해 웃어주고 있을것을. 손끝이 창문에 닿았다. 차가운 온기가 온몸으로 퍼졌다. 그리고 힘을 다해 창문을 밀었다. 빗바람이 방안으로 들어온다. 고양이가 잠결에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당신을 확인했다.

 

 마나미,

 

 그 누구보다도 이루말할수 없을정도로 밝게 웃고있는 당신이 정원 정가운데에 서있었다. 믿기지가 않아 눈을 꾹 한번 감았다가, 다시 두눈을 희망과 함께 떴다. 당신은 당연하다는듯 그 자리에 항상 그렇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비가 오는듯 창문 앞에 서있는 나에게로 비가 들이닥쳤다. 하지만 신경쓸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방을 뛰쳐나가 자칫하면 구를수도 있는 계단을 세단씩 뛰어넘으며 현관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문을 열고, 당신이 있는 곳으로 날개를 열고 날아갔다. 마치 알에서 깨어나 어미를 따라 처음으로 날개짓을 하는 새처럼, 서투르게, 하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당신은 왜 이제 왔냐는듯 나를 반겨준다. 나는 두 하얀 날개를 펼쳐 당신을 감싸안는다. 이대로 숨이 멈춰버려도 좋을것만 같아. 하늘이 점점 내려앉아 당신과 나를 푸른 별들 사이로 가라앉게 한다. 이제는 사라지지 말아요. 나는 당신에게 속삭였지만, 이번에 마저 듣지 못한듯 내 품에 얌전히 안겨 아무말 없는 당신이었다.

 

 

D-2

 

 당신은 끝까지 사랑스러웠다. 열두시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려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새도록 당신과 함께했지만 어두운 침묵속에 가라앉은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라면 상관없다. 아무도 없는 세계라도, 빛이 없는 낮이 결코 오지않더라도, 당신의 가녀린 오른손을 붙잡고 있으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다. 그저 당신과 나만 이 세상에 존재하면 되는거야. 내 진심어린 소원이 마음속 멀리 울러퍼졌다.

 

 마나미.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말해요. 당신이 심은 아이리스와 물망초들을 다 꺾어버릴테니, 조용히해요. 이대로 있으면 되는거야. 나는 온힘을 다해 두귀를 듣기 싫다는듯 손으로 막았다. 더이상 말하지 말아요, 제발, 애원하는 나의 목소리에도 당신은,

 

 마나미, 이제 슬슬 꿈에서 깨는편이 좋지않겠니.

 

 당신의 말 한마디가 구름이 조각조각나 당신과 나의 사이로 우박마냥 떨어진다. 날카로운 구름조각은 내 마음을 갈귀갈귀 찢어놓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신의 형상이 산산조각나면서 빛과 함께 흩어진다. 허우적거리며 손을 저었다. 안돼. 가지마요, 가지마요, 울부짖으며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내 모든 감정을 쏟아내며 당신에게 간원했다. 목소리가 쉴만큼 오열했다. 당신이 흩어지며 날라가는 조각들을 손을 내밀어 애써 잡았지만, 손가락 사이사이로 투명한 연기가 되어 날라가버리는걸 보고는 주저앉아버렸다. 순간, 연기들이 하얀나비의 형상으로 천천히 변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모른채 앞으로, 예쁘게 날개짓을 하는 하얀나비들의 뒤를 따라 뛰어갔다.

 

 머리속에서 그려왔던 환상을 현실로 만들면 모든게 망가질것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아무리 도와달라 외쳐도, 이미 늦어버렸다. 아무도 나에게 손을 내밀며 도와줄수 없다. 그리고 나는, 정신없이 하얀나비들을 따라가다, 당신이 정성껏 심은 꽃들 사이로 쓰러졌다. 보라빛과 푸른빛을 띄는 꽃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애석하게도 당신의 향기가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그래, 이것으로 만족스러워. 나는 당신이 소중히 가꾼 꽃들을 부셔버릴것마냥 꽉 끌어안았다.

 

 보라색이 좋아.

 

 나는 당신이 항상 하던 말을 입밖으로 내뱉으며 중얼거려보았다. 약한 나를 용서해요. 쓸쓸해서 잠들지 못했던 나를 재워준 당신에게 감사해요. 누구보다도 날 좋아하고, 사랑해줬던 당신이 그리워요. 이제 더 이상 현실을 거부하지않고, 당신의 곁으로 향할께요. 꽃밭에 누운 나의 두 눈에서, 시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제 안녕. 마지막 인사를 남긴채. 흐려서, 너무나도 흐려서 보이지 않았던 내일과 오늘은 이제 다,

 

 안녕.

 

 

D-1

 

 그날 아침, 날씨는 그 어느날보다 맑고 깨끗했다. 마나미 집안은 뒷뜰에서 산가쿠가 항상 정성을 다해 키우던 아이리스와 물망초 꽃들 사이에 누워 깊은 잠에 빠진 그를 이른 아침에 발견했다. 산가쿠의 모친은 정신을 잃어 쓰러졌고, 이미 맥박이 뛰지 않아 헛된 희망조차 품을 수없는 그의 가족은 처량하게 식은 그의 몸을 눈물과 함께했다.

 

 그집 도련님, 백일몽이였데요.

 

 산가쿠의 이웃집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던것이 사실이였다는 것을 알게된 꽃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은 한 나이많은 여인이 말했다. 혀를 차며, 나이가 많아보이는 다른 여인이 말을 이어나갔다.

 

 애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서 정신이 나갔다고 하더라구요.

 

 깔깔거리며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를 내는 두 여인이 맞장구를 치며 제스쳐를 취했다. 순간, 덤불에서 튀어나온 한 고양이가 여인들의 사이를 가로질러 뛰었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는 두 여인들을 여기저기 할퀸 고양이가 땅에 안전하게 착지했다. 쓰라림과 놀람에 동네가 떠나갈듯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는 두 여인이 저 고양이 잡으라며 소리쳤다. 한참이나 쉭쉭거리며 두 여인에게 거리를 두던 작은 몸집의 고양이가 다른방향으로 달아났다. 얼굴에 고양이 손톱으로 할켜져 상처가 난 두 여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놀라며 자신의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있던 고양이는, 만족스럽다는듯 갸르릉 거리며 어딘가로 가는듯했다.

 

 마나미의 집 뒤뜰에 있는 아이리스와 물망초가 심겨진 밭 주변에서는, 자주 지나다닌듯한 새끼 고양이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꽃말

물망초 - 나를 잊지말아요

아이리스 -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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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중학생들은 그렇다. 아직 성숙하지 않아 때묻지 않은 작은 영혼들은, 하고 싶은 진심 어린 말들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남자아이들은 한층 더 컸다는 기분에 한껏 상대방을 생각하지 않은채 자신의 감정을 표출한다. 하지만 순수하다. 철들지 않은 어린 아이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작은 연못에 살지만 큰 바다로 떠나고픈 아기 물고기처럼 많은 생각을 마음 안에 품고 있다. 적어도 갓 중학교 1학년에 입학한 14살의 아라키타 야스토모는 그랬다.

 

 더듬아,

 

 어김없이 장난치는 아라키타에게 손을 뿌리치며 걷는 토도였지만, 연신 쫒아오며 머리를 잡아당기는 아라키타가 짜증나서 그만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학교에서 그렇게 괴롭혔으면 충분할 것을, 학교가 끝난 후 아라키타와 같은 열차에 타기 싫어 걸어가기로 결정한 것까지 자신을 따라오는 아라키타가 제법 열을 뻗치게 했다. 발에 채이는 흙바람과 길가에 살랑거리는 강아지풀이 자신을 동정하는 듯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렸다. 두 손으로 책가방을 꽉 쥐고 더욱더 걸음을 빨리 했다.

 

 야, 바퀴벌레- 좀 천천히 걸어,

 아씨, 그만 좀 따라오라고!!

 

 두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위협하는 듯 신경질을 내며 소리 지르는 토도에 살짝 당황한 듯 아라키타는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아라키타를 쏘아보던 토도는 새침하게 다시 고개를 돌려 시골길을 따라 걸었다. 한참이나 물끄러미 뒤에서 토도의 덜그럭거리며 필통소리가 나는 책가방을 바라보며 아라키타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꾸미는 듯 다시금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작은 발로 다다다 뛰어가 토도의 머리에 얹혀있는 주왕색의 머리띠를 잡아 뺐다. 성이 난 토도가 발딱발딱 뛰며 소리쳤다.

 

 너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

 

 머리띠를 들고 도망가는 아라키타를 붙잡으려고 토도가 뛰쳐가며 외쳤다. 바보 멍청이 똥개 말미잘같은 아라키타!!! 도대체 자신을 왜 이렇게 까지 괴롭히는지. 토도는 억울한 마음에 길에 간간히 걸리는 돌멩이들을 발로 힘껏 차며 아라키타를 쫓아갔다. 순간 어찌나 빠른지 자신과 벌써 거리가 차이 나는 아라키타가 고개를 돌리고 한 손에는 머리띠를 장난치듯이 휭휭 돌리며 외쳤다.

 

 나는 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토도는 뜀박질을 멈췄다. 토도의 눈앞에는 맑은 햇빛으로 물들여져 반짝반짝 빛나는 아라키타의 땀 범벅이 된 얼굴이 보였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툭 던진 말에 얻는 대답이 생각보다 꽤 괜찮아서, 집에 돌아가는 길 매일 보던 꽃 한 송이를 꺾어 집으로 소중히 가져가는 그런 날. 열차를 마다하고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길을, 선로를 따라 걸으며 하얗게 흘러가는 구름들과 함께 중심을 잡고 말이다. 눈부시게 빛나는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문득 혼자 배시시, 웃어보기도 하고, 나를 살짝 감싸 안아 주는듯한 바람에 몸을 맡겨 걸어나가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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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수위 주의

 

 

 

 

 퇴근하는 길은 항상 그렇듯 녹초가 되어서 돌아가곤했다. 유독 오늘따라 자신을 심하게 갈궜던 팀장과 윗 선임들에 대해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아라키타는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꺼내들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폈던 지긋지긋한 담배였다. 타들어가는 담뱃재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역시 불행하게도 이와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담배 끄트머리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아라키타는 담배를 마저 핀후에 땅으로 던지고는 구두로 비벼 밟아 담뱃불을 껐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이끌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이 아닌 반대방향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탔다. 고등학교 동창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그마치 10년만이었다. 졸업을 한 후에는 예상과는 다르지않게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기고, 연락 하는 횟수가 잦아드는 일이 일쑤였다. 또한 대학때 만난 친구들도 졸업후에는 취업하랴, 공부하랴 다들 너무나도 바쁜 인생을 살아가고 있어서 연락을 꾸준히 하는 친구들은 몇몇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이 동창회는 과거의 사람들과 십년만에 만나는 자리일것이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반면에 자신이 초라해지지는 않을까, 하며 아라키타는 잠깐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늦은 시간 때문인지 전철 안은 몇몇 자리가 비어있어서, 제일 한가해보이는 자리로 다가가 앉았다. 아라키타는 한숨이 놓여서 의자에 몸을 기대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텅 비어있는 시야에, 순간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또 이러는구나. 아라키타는 눈을 지그시 떴다가, 다시 감았다. 오늘따라 몸이 유독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아, 동창회고 뭐고 때려치고 집에가서 잠이나 자버릴까.

 

 시간이 많이 늦어서 서둘러 모이기로 한 술집 앞에 가니 술집 문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고있는 몇몇 익숙한 동창들의 얼굴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하니 왜 이렇게 늦게왔냐며 얼른 안으로 들어가라는 잔소리아닌 잔소리를 하는 과거의 친구들이었다. 아라키타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며 다시 인사를 한뒤 술집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늦긴 늦었는지 주변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이 널려있었다. 좁은 복도에 들어서있는 사람들을 지나쳐가며 다른 동창들이 있는 자리를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었다.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두르는 느낌이 나는 동시에 아라키타는 뒤를 돌아보았다.

 

 "야스토모!!!"

 "…아, 시발 놀랐잖아 돼지새끼야!!!!!!"

 

 아라키타는 터질거같은 가슴을 부여잡고 신카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짜증을 냈다. 여전하네,라며 웃는 신카이는 하나도 다를것이 없이 10년전 얼굴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야, 너 새끼 방부제 쳐먹었냐? 라며 시덥잖은 농담을 던진 아라키타에게 신카이는 사람좋게 허허 웃어주며 야스토모도 하나도 안변했어~라고 말을 건냈다. 비어있는 자리에 앉으면서, 그 옆에 앉아서 혼자 술을 내립다 부어마시고 있는 후쿠토미에게도 인사를 건냈다. 이미 맛이 간건지 왼손에 마요네즈를 잔뜩 뿌린 오징어 다리를 들며 야 너 친척왔다~ 라며 해맑게 웃는 후쿠토미를 자제시킨 신카이였지만 말이다.

 

 "야스토모는 그래서 요즘 일하는거야? 퇴근하고 바로왔어?"

 "어, 퇴근하고 바로왔다. 피곤하니까 술 내놔라."

 

 아저씨 다됬네 야스토모… 빈 맥주잔에 술을 따르고 아라키타에게 건낸 신카이는 다시 말을 꺼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야스토모는 결혼 예정 없어?"

 "나야 뭐… 아직은. 너는?"

 "난 다음달에!"

 

 자신의 네번째 손가락에 껴져있는 은색의 반지를 아라키타의 얼굴 앞에 들이밀며 뿌듯한듯 웃는 신카이였다. 신카이, 내가 그말은 하지말라했지!! 라며 주먹을 쥐고 테이블을 쾅 내려치는 후쿠토미에 아라키타는 깜짝 놀랐지만, 곧 이내 엊그저께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져서 심기가 불편하니 그냥 냅두라는 신카이의 말에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후쿠토미를 바라보는 아라키타였다. 너나 나나, 피차일반이구나. 갑자기 인생의 쓴맛이 느껴져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돼지새끼, 얌체같이 먼저 품절되기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감자튀김을 집어먹었다. 케챱을 휘휘 저으면서 신카이가 이어서 하는 이야기를 귀기울이며 들으며 간간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옛날 과거의 기억도 되살아나고, 의외로 오래간만에 만나니까 재밌는것도 같았다. 순간, 말을 이어나가던 신카이가 무언가 빼먹었다는듯 박수를 치며 아라키타, 너 그거 알아? 라고 물었다.

 

 "뭘 알아?"

 "토도, 결혼하는거!"

 

 술을 마시려던 손이 멈췄다. 몇초동안 물끄러미 허공을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리고 술을 들이마셨다. 순간 누군가가 또 오는 소리가 들렸고, 아라키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토도녀석 언제 결혼하냐고 물어보려 했던 질문은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묻혀버렸다. 차라리 아라키타에게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야, 토도 데리고왔다."
 "진파치,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또다시 한번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의자에서 일어나며 새로 온 동창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토도였다. 언제부터 머리띠를 안쓰게 된건지, 학창시절 그렇게 고집하던 머리띠는 없애고 단정하게 갈색빛으로 염색한 토도가 눈앞에 서있었다. 아라키타는 물끄러미 멀리서 토도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여러 친구들에게 인사하며 베실거리며 웃는 토도였다. 단발머리도 여전하고…여전히 예쁘구나. 아라키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유 모르게 마음이 착잡해지기 시작했다.

 

 "진파치, 여기 앉아."

 

 아라키타 앞 자리에 의자를 빼고 앉은 토도가 자리를 안내해준 신카이에게 고맙다며 인사를 건냈다. 마침 너 얘기를 하고 있었다며, 결혼 축하한다는 얘기에 가방을 뒤적거리고 있던 토도가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순간 아라키타와 토도의 눈빛이 마주했다. 마주치자마자 서둘러 아라키타보다 빠르게 눈을 돌린 토도가 웃으면서 또 한번 고맙다고 했다. 아라키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갈피를 잡지못해 어수선해지는 자신이 절망스러워졌다. 도대체 왜 아직까지 이러는 걸까. 끝이야, 아라키타. 모두 잊었잖아. 오랜만에 느껴보는 잊고 있었던 그 감정에 아라키타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코끝이 아려왔다.

 

 신카이는 이미 다른 테이블에 동창들과 얘기하기 위해 가버렸고, 후쿠토미는 술기운 때문인지 쓰러져 정신을 잃은채 잠에 취해있었다. 제 3자가 없는 토도와 아라키타의 사이는 말그대로 침묵이였다. 둘다 아무말없이 잠잠히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듯 잠시 입을 벌리던 토도였지만, 이내 입을 닫고 무릎위에 올려져있던 가방을 꼭 손으로 쥐는 모습이 보였다. 맥주잔만 만지작거리던 아라키타가 답답한 마음에, 몇분간의 정적이 흐르는 고민끝에 먼저 입을 열었다.

 

 "…토도, 결혼 축하해."

 

 문득 들려오는 아라키타의 목소리에, 토도는 당황한듯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어 아라키타를 바라보았다.

 

 "넌 어떻게 맨 처음으로 하는말이 그거냐."

 "그럼 뭐라해."

 "잘지냈냐고도 안물어보고…."

 "그런 형식적인 멘트 별로 안좋아하면서."

 

 아라키타는 토도에 관해서 모든걸 다 잘안다는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토도 역시 그랬다. 서로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듯이,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역시 넌 잘지냈나보네."

 "…어?"

 "잘지냈구나…."

 

 아라키타의 답지않은 징징거리는듯한 볼멘소리에 토도는 괜찮냐며 물었다. 아라키타는 점점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다. 아까전부터 술을 마셔서 그런걸까. 약한편도 아닌데, 분위기 때문에 괜히 그러는건가. 말을 하는 토도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너무나도 잘 지낸것처럼 보여서, 괜시리 기분이 나빠졌다. 어. 얼굴에 흘러내리는건 뭐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정체모를 뜨거운 액체를 손으로 슥 닦았다. 이번엔 놀란 표정으로 보이는 토도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나 왜이러는걸까. 술기운이라면 얼른 정신을 차리는편이 좋을듯했다. 하지만 머리가 점점 어지러워졌다. 이제는 주변 테이블의 시끄러운 소음소리가 더이상 토도와 자신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고, 앞에앉아있는 토도의 목소리밖에 귓가에 들려오지 않았다. 정신차려 아라키타, 아라키타는 연신 마음속으로 자기자신에게 정신을 놓지 말라며 속삭이며 재촉했다.

 

 순간, 토도의 얼굴을 게슴츠레 눈을 뜨고 가만히 바라보던 아라키타는 무슨 생각인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토도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고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술마시며 얘기하는 동창들은 이 둘을 신경쓸 틈도 없는듯했다. 그들을 뒤로한채, 토도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않는 아라키타의 손에 손목이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였다. 몸부림도 쳐보고, 이름도 불러보고, 등을 때리며 도대체 뭐하냐고 고래고래 소리질러도, 아라키타는 토도의 말을 여전히 무시한채 모르는 곳으로 자신을 데려갔다. 그리고 아라키타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화장실안으로 토도를 내팽겨치듯이 밀어넣고, 다음으로 자신도 들어와 화장실 문을 세게 닫았다. 구석으로 밀쳐진 토도는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아라키타를 쏘아보았다. 아라키타의 두 눈은 힘없이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라키타가 토도에게 거칠게 달려들어 입을 맞췄다. 깜짝 놀란 토도가 싫다며 아라키타의 어깨를 연신 밀어냈지만, 술에 취한 사람의 힘은 당해낼수없는 토도였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혀를 더욱더 깊히 밀어 넣으며 자신의 뒷통수를 잡아 당겼다. 토도는 점점 숨이 가빠져왔고, 농염하게 혀를 섞는 아라키타 때문에 눈이 풀려 거의 매달리는 식으로 아라키타에게 몸을 붙혀왔다. 둘은 뭐에 홀린것 마냥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이때를 기다렸다는듯, 아라키타는 토도의 옷안에 손을 밀어넣어 가늘한 허리를 쓸어내렸다. 진득하게 입을 맞추다가, 아라키타는 토도의 목에 얼굴을 묻었다. 아찔한 분위기에 토도는 눈을 질끈 감고 아라키타의 두 어깨를 잡았다.

 "흐…."

 "​……."

 "아라…키타아…."

 미칠 것 같았다. 결국 울음이 터진 토도가 아라키타의 허리를 와락 감싸 안았다.​ 순간 자신에게 안기는 토도때문에 놀란 아라키타의 손은 허공에 갈 길을 못찾고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품에 안겨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엉엉거리며 우는 토도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익숙한 냄새였다. 잊었다 했지만 사실 잊을수 없었던, 10년간 많은 사람들을 거쳐왔지만 너에게서부터 시작하고 너에게로 끝나버렸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항상 너와 비교할수밖에 없었고, 너의 익숙한 체취가 그리웠고, 너의 달콤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왜 헤어지자했어, 왜, 도대체 왜?"

 "미안해……."

 "지금은 이미 늦었잖아, 이제와서 어떻게 하자는거야 이 바보야!!!"

 토도는 온갓 인상을 다 쓰며 절실한 목소리로 아라키타에게 물었다. 10년전 자신에게 왜 이별을 고했는지,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아는지, 그걸 알면 어떻게 자기한테 잘지냈냐는 소리가 나오는지 따지듯이 물었다. 서러웠다. 괴로웠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싫었다. 예전 헤어진 후의 자신의 생활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없었다. 너무너무 힘들어서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겨우 잊은줄 알았는데, 오랜 기간이 지난 후에도 자신의 감정은 10년전과 별 다를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다. 서로의 생활에 이제는 더이상 개입할수 없을정도로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흘러버렸다. 아라키타는 눈물이 흥건한 토도의 볼을 감싸쥐고 다시한번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는 토도를 안아 세면대 위에 조심스럽게 앉혔다.

여전히 아라키타의 목을 감싸안고 있는 토도의 바지를 벗겨내서 옆에 있는 서랍위에 올려놓았다. 자신의 바지 버클을 내리고는 토도의 다리를 벌려 자신의 허리에 감게 했다. 눈물이 고여있는 토도의 눈위에 가볍게 키스를 하는것과 동시에 자신의 것을 안으로 깊숙히 밀어넣었다.

 "하… 하으으…아라키타아…."

 

 거칠게 허리짓을 하는 아라키타의 목을 감싸안고는, 아라키타가 움직이는 대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토도의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내려주었다.​ 둘의 거친 숨소리에 공기는 점점 더워져만 갔고, 거울에는 하얗게 서리가 피었다. 너무 좋다며 더 해달라는 토도의 아이같은 보챔에 아라키타는 세면대에서 토도를 끌어내려 안은후에 아래서 엇박으로 박기 시작했다. 토도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둘은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어느샌가 부터 아라키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토도가 울지말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참으로 모순이였다. 또한 잘못된 만남이었다. 어쩌자고 이 장소에 와서 서로를 만난걸까. 이 장소에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감정 소모 할일도, 서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일도 없었을텐데. 그저 계절이 지나가는것처럼, 세월이 훌쩍 지나가 함께했던 그 좋았던 추억들을 서서히 잊어버리는것이 더 좋았을텐데. 

 서로를 잊었다는 구차한 변명들을 줄줄히 늘어놓고, 마음속 한구석에서는 서로를 향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남아있게 한것이 화근이자 잘못이었다. 외로움, 그리움, 원망과 미움들이 모이고 모여 한 덩어리가 박혀버렸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날때마다 덩어리는 조각조각이 나 흩어졌지만,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자그마한 한 덩어리가 이런 상황을 자초해버렸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좋아한다. 몇번을 말해도 모자를 이 말을 이제는 과거형으로 바꿔야했다. 이제는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것처럼 평상시의 서로의 생활로 돌아가야한다. ​

 서로를 껴안으며 연신 이름을 부르던 아라키타와 토도는, 아라키타가 자신의 욕망을 토도 안에 분출하는것으로 모든게 끝났다. 

 "…미안해.미안해…."

 이 한마디로 말이다.

뒤에 더 써야될거있는데 외전식으로 나중에 하나더 쓸께요 지금은 너무 졸리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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