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금
인간은 욕심의 동물이다. 질투와 시기심, 간사함을 고스란히 마음 한쿠석에 담고 살아간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어떤 부류의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상대방에게 표출함으로써 욕심으로 가득 쌓여있는 큰 덩어리를 뱉어낸다. 마나미 산가쿠도 그 인간 중 하나의 동물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치면, 자신의 소유라고 오롯이 믿고있는 연인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때때로 작은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곧 이어 반응이 없거나 자신을 무시하는 연인을 보면 서러움과 슬픔이 가득 담긴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한다.
토도 진파치 또한 욕심으로 둘러쌓인 인간이다. 그는 애석하게도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것을 몸소 깨닫기 위해 셀수없는 남녀들과 몸을 섞곤한다. 자신이 언제든지 돌아갈수 있는 옆자리에 번듯한 연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사람만 바라볼수 있다는 시답잖은 발상을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연인이 자신을 떠날 낌새를 조금이라도 흘려보내거나 냄새를 맡으면,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말로 상대방을 도망칠수 없는 족쇄에 가둬버린다. 당신은 내 소유야. 내가 이렇게 불순한 인간이여도, 당신만큼은 내 옆에 있어야한다. 토도 진파치는, 어쩌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잔혹한 사람일수도 있다고 주변인들은 말한다.
그 날 새벽은, 그 흔한 별들조차 조각구름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달도 보이지 않아 가로등이 꺼진 골목들은 앞이 안보일정도로 어두컴컴했고, 새까만 연필심으로 여기저기를 그어놓은듯한 구름들이 잔뜩 모여져서 어지러웠다. 털실이 서로 엉킨것처럼 복잡한 하늘은 정말이지 마나미 산가쿠의 기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데 한몫을 충실히 하는듯 보였다.
익숙한 문에 열쇠를 넣고 천천히 돌렸다. 어디서 복사한듯한, 녹이 슬어 구릿빛을 띄는 열쇠가 쨩,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문이 열리고 마나미는 몸을 안으로 들어섰다. 딱히 쾌적하거나 편안하다고 전혀 느낄수 없는 집안을, 마나미는 무언가 알수없는 감정을 지닌 두 눈으로 하나하나 관찰하듯 둘러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 앞에 있는 신발장을 확인했다.
"...선배."
마나미는 무릎을 굽혀 처음 보는 구두를 두 손가락으로 잡아 눈 앞에 들어보았다. 마치 오늘 아침 닦은 것 마냥 광이 나는 검은색 구두를 한참이나 눈앞에서 경멸스럽다는듯 흔들어보이다가, 텅빈 눈으로 거실에 열려있는 유리창을 향해 힘껏 던져 버렸다. 와장창, 유리파편이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귓가를 파고 들어왔지만, 마나미는 신발을 고스란히 신은 채 집안으로 한발자국 발을 디뎠다. 한걸음 걸을때마다 마나미의 짙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단정해 보이도록 짧게 자른 머리와, 아직 어린티를 벗지못한 몸에 딱 맞는 교복. 마나미는 익숙한 경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항상 이런 틀이야.
굳게 닫힌 방문은, 마치 열지 말라는듯 마나미의 머릿속을 요동쳤다. 제자리에 굳은듯 가만히 있던 손은 점점 목적지를 향해 올라갔다. 그리고 보고 싶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순인 상황에 마나미는 방문을 힘을 실어 열었다. 끼익. 방문이 여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미는, 한층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선배."
"마나미?"
방 안은 뿌옇게 물든 담배 연기로 맑은 공기를 찾아볼수 없었다. 얼마나 피워댔는지, 알몸으로 속옷만 입은채 입에 담배를 물고 누워 있는 토도가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과 함께 했던 이불은 누구라도 알아챌수있도록 시뻘겋게 물든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사이사이에는 몇시간의 정사를 증명하듯 뿌옇게 말라 붙은 한 수컷의 욕망이 넘쳐있었다. 마나미는 차갑게 식은 표정으로 토도를 바라보았다. 마나미의 시선을 눈치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일도 없을거라는듯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앉아 다리를 꼬는 토도였다. 하얗고 기다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고 마나미를 위로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눈꼬리가 반달마냥 휘어지게 눈웃음을 치는 토도를 보고, 헛웃음을 치는 마나미였다.
"...이 씨발년이..."
"마나미, 뭐라고?"
"상황파악 못하고 말이야."
짝, 소리가 크게 들리고, 담배가 밑으로 떨어지는것과 동시에 토도의 얼굴이 사정없이 돌아갔다. 이런일이 한두번이 아니라는듯 능숙하게 바닥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되돌린 토도가 입을 열었다.
"담배 아깝잖아."
"......"
마나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마음을 억눌렀다. 닳고 닳아 지저분한 그를 죽여버리고 싶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는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가 사랑스러워 부셔버리고 싶기도 하다. 당신은 내 소유잖아. 내 연인이잖아. 내 사람이잖아. 내 것이잖아?
"오늘은 너가 하지말라해서, 그 맨날 파란 넥타이 매고 오는 아저씨랑밖에 안했어."
"...뭐?"
"이정도면 많이 착해진거지? 응?"
"......"
"칭찬해줘, 응? 마나미-,"
애원하듯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그가 좋다. 그를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이 막연하다. 자신의 허리를 안고는 살살 쓰다듬는 그를 부셔버리고 싶다. 그가 자신만을 바라보는 헛된 희망따위 이미 버려버렸지만 큰 아량을 베푸는듯 그는 자신을 마르게 한다. 목이 탄다. 그가 고파지게 만들어 버린다.
"내가 내 애인 올거라고, 이제 집에서 나가라고 하니까 놀라서 구두도 안신고 허겁지겁 나가더라구."
"선배..."
"그 모양새가 너무 웃겼어."
깔깔 웃으며 마나미의 허리를 더욱더 끌어당기다가 고개를 들어 그의 시선을 바라본다. 지그시 마나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강아지를 귀여워 해주는 주인처럼. 자신에게 충실한 개를 칭찬해 주는것 처럼,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쓰다듬어 내려준다. 마나미는 아찔하다. 그의 손길이, 그의 시선이, 그의 체온, 이 모든 것이. 기분이 붕붕 떠올라 겉잡을수가 없다. 견고하게 자라나는 이 감정이 해로운 독에 취해버린것만 같다.
"선배...나 사실 오늘, 말할거 있어서 왔어요."
"뭔데?"
이제는 자신의 바지 앞섬을 지분거리며 장난치는 그에게 말을 건냈다. 좀 더 빨리 결정내렸으면 좋았을껄. 좀 더 빨리 이 옭아매는 관계를 불태워버렸으면 좋았을껄. 하지만 이 모든것이 끝이다.
"헤어져. 이제 끝이야."
"...마나미?"
"이제 내가 찾아온다는 생각하지마요. 난 선배의 개가 아니니까."
그리고는 거칠게, 당신을 밀어낸다. 처음으로 당신의 표정은 아무 감정을 띄지않은 표정으로 바뀐다. 항상 재잘거리며 입을 가만두지 않았던 당신이, 참으로 조용하다. 그리고 예상했던것처럼 당신은 히죽거리며 웃음소리를 뱉기 시작한다.
"넌 내가 다른사람들이랑 섹스하는게 싫은거지."
"......"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마음이고, 내 결정이야."
그리고 당신은, 못을 박는듯 말한다.
"그리고 난 너가 나한테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걸 알고 있어."
나는 당신의 마음없는 말에 혼자 일렁이다가,
"개새끼야."
당신의 마지막말에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로 자기자신이 너무나도 처량해지고 원망스러워서, 당신에게 죽일것처럼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반항심이 들어서 당신의 목에 새겨져있는 붉은 키스마크의 주인을 죽이듯이 졸랐다. 당신은 어쩐지 행복한 표정이였다. 모순이다. 스스럼없이 자신의 초라한 생명줄을 나에게 맡기는 당신이 헤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신때문에 화가 나고, 처음으로 간섭하고 처음으로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점점 눈을 감는 당신의 얼굴로 나의 두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내 눈물을 지닌 당신의 얼굴이 참으로 아름답다. 마치 이런 결말을 원한것처럼, 너무나도 편안하게 눈을 감고있는 그가 눈앞에 보인다. 나 역시 두 눈을 감는다. 그 흔한 해피 엔딩 스토리처럼, 우리는 행복으로 끝날수는 없는걸까.
과연 옳은것인지, 틀린것인지 그 누구도 알수없는 우리는,
패러독스다.
'겁쟁이 페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라토도] Andante Cantabile (0) | 2014.07.04 |
---|---|
[마나토도] D-day (0) | 2014.06.29 |
[아라토도] 평범한 그런날 (0) | 2014.06.23 |
[아라토도] Our last memory (0) | 2014.06.23 |
[마나토도] 18살의 사춘기 (0) | 2014.06.20 |